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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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찾아온 사람(방문자)들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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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온 사람(방문자)들

 

 

스베덴보리가 널리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는데, 그 거의 반은 알고 싶기에서, 더러는 그가 사랑하던 이가, 지금은 죽고 없는 친구에게서 무슨 전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데서 찾아왔다. 스베덴보리는, 그가 영으로 겪은 일을 마치, 인도에서 온 나그네가, 갠지스 강변의 삶을 말하듯이 말했다. 그에게 그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고, 지금은 232년 동안에 걸친 버릇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결코 언제나 있다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그는, 그 묻는 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었다. 1766년[78세] 늦여름에, 스베덴보리가 외국에서 돌아오자 곧, 그를 찾아온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니코라스 코린 이라고 하는 열아홉 살 난 청년이었다. - 그는 나중에, 아메리카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코린 은, 스베덴보리의 친한 벗 가운데 한 사람인 닐스 셀슈스 박사의 집안의 가정교사로서 스톡홀름에 살면서, 때때로 하나님을 본 사람의 일이 여러 가지로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을 듣긴 했지만, 친히 그를 만난 적은 없었다. 그는 웁살라 대학에서 학문을 닦는 중에, 도서관에서 그 신학 책 몇 권을 보고,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 동생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터여서, 아마도 그 일로 해서 찾아볼 마음이 생겼다.

 

 

그는 몸이 장부 같고 등줄기가 쭉 뻗고, 조금은 여윈 몸에, 얼굴빛이 핼쑥해진 늙은 신사를 보았는데, 그 얼굴은 늙은 나이에도 아랑곳없이, 매우 상쾌하고, 아름다운 얼굴 모습을 띄우고 있었다. 이것도 아마 친구의 억지 부탁으로, 그때에 그린 초상화에서 받는 인상과 똑 같다.

 

니코라스는, 내가 버릇없이 당신을 찾아온 것은, 젊은이에게 있기 쉬운 염치없음에서 난 것이 아니고, 그처럼 이름난 분을 꼭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고 밝혔다.

 

 

스베덴보리는 천천히 그를 맞았으며, 막 오후가 된 시간이기도 해서, 스베덴보리의 버릇에 따라, 맛있는 커피를 권했다. 그리고서 두 시간 남짓, 사람의 영혼이 지닌 성질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베덴보리가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영과 사귀고 있는데, 말을 마치자, 코린 은 큰마음을 먹고, 대단한 은혜이긴 하지만, 두세 달 전에 죽은 내 동생을 만나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하고 말을 꺼냈다.

 

 

스베덴보리는, 하나님은 현명하고 좋은 이유에서, 영들의 세계를 우리들의 세계에서 떼어놓고 있기 때문에, 꾀 중대한 까닭이(이유)없이는 결코 주고받게(교류)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고 대답했다. 코린 은, 제게는 다만 형제의 따뜻한 사랑을 만족시키고, 그렇게도 흥미롭고 또 그렇게도 장엄한 곳을 탐구하려는 치열한 바람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 대답했다.

 

헤어지면서 스베덴보리는 그 젊은이에게, 셀슈스 박사에게 보내는 것으로, 아주 곱게 꾸민「풀이(해설)」의 책 한권을 넘겨주었다.

 

 

그는 안수예식을 마치고 나서, 펜실베이니아로 갔고, 거기에서 스웨덴 집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는 식민지의 중요한 사람이 되었고, 아메리카 철학 협회 창립자인 벤쟈민 프랑크린의 친한 벗이 되었다. 그는 정치에서만 아니고, 종교에서도, 아주 너그러운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이 되지를 못하였다. 그는 프랑크린 처럼 천문학의 열렬한 학도였으며, 스베덴보리가 쓴 「우주사이의 여러 지구들」을, 하늘이 한없음과, 떠돌이별(혹성)에 사람이 살 수 있는데 대하여 말하고 있는, 합리적 이론을 매우 칭찬하였다.

 

스베덴보리가 죽은 지 12년이 지나서 1784년에, 「새 교회」가르침에 관한 맨 처음 강연이, 제임스 그렌에 의하여 필라델피아에서 행하여 졌을 E에, 코린 이 그 이름난 하나님을 본 사람을 안다는 소문이 퍼져서, 이 스웨덴 목사는, 그 이름난 같은 나라 사람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을 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날마다 내는(일간지) 「가젯트」에 1801년 가을, 이어서 다섯 번 원고를 보냈는데, 나중에 그것은 다른 신문에도 옮겨 실렸다. 그것은, 스베덴보리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끼친 모두의 인상을, 뭉뚱그려서 말하는 것으로서 값있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스베덴보리는, 새로운 종교의 가르침의 체계를 굳게 세우도록, 하늘나라에서 명을 받았다는 것은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것을 폭력을 써서 강제하고자 하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그 책에 의하지 않고서는, 종교를 바꾸는 사람을 얻으려고 힘쓰지 않았다. 스웨덴에 대하여, 그는 한 교파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바람을 한 번도 넌지시 비춘 일도 없었으며, 교회는 온건하게 천천히, 위로부터 밝혀져 굳혀지고(확립되고), 이윽고 그것이 「새 교회」의 꼴을 갖도록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살았다.』 코린 은 다시, 스베덴보리는 몸을 움직여서 하는 모든 짓에, 어떤 거룩한 것을 자랑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자라면서, 그 규칙을 지키고, 자리를 같이한 모임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나 즐거움에도, 그것이 이치에 맞으면 함께 끼었다. 매우 소극적이긴 하였으나, 먹는 일에나 마시는 일에는, 쓸데없는 망설임은 갖지 않았다......,』

 

 

이 해에[78세], 스베덴보리를 찾아온 다른 청년은, 강철의 중심지인 에스킬스투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높은 데서 새로운 목소를 , 하늘나라에 계시는 주님에게서 메시지를 들은 것이다.』그는 곧 그것을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나는 마치 하늘나라로 옮겨간 것처럼 느꼈다』고 말한다. 요한센은 그 일이 쇠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윤리와 철학에 깊이 통하고, 나중에는, 이 새 계시를 승인한 사람들의 단체에서 이끌고 가는 구실을 하였다. 그는 스베덴보리와, 특히 「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에 스베덴보리는 그 책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고 전해온다.

 

 

『그것은 진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좀 나라는 바탕(자아성)이 섞여 있습니다. 나는, 내 라틴어의 글체가 단순하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그 안에 라틴어를 장난 끼로 썼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때에, 또 젊은 교직자 요나스 펠슨 오드나를 만났다고 생각된다. 오드나는 나중에, 그 신학 책에서 몇을 스웨덴말로 옮겼고, 나중에 그 지식은, 새 가르침을 퍼뜨리는 일에 두드러진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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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친절한 마음씨는, 일반 사람들과 상냥하게 사귄 데서도, 아주 잘 나타난다. 그는 찾아온 사람들을 점잖게 맞아들였고,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외국의 귀한 꽃을 심은 정원에 들어오게 하면서도, 돌보는 이 없는 아이들을 넣어서는 안 된다고, 정원지기에게 말해 두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정원을 망가뜨리지 않게 하기위해서이고, 자기를 지키는 데는, 당연한 것이었다.

 

 

어느 날, 한 작은 계집아이가, 그 정원 들목(입구)가까이에 서 있었다. 스베덴보리는, 이따금 정원 안에 있는 한 작은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군. 했는데, 정원지기에게 『문을 열어 주어라, 그 아이는 뜰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단단히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 여자는, 제 집은 그 거리의 다른 지구에 있는데, 어떻게 저 분은 그것을 알고 있을까, 하고 뒤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가련한 이야기가 그와 가까운 데 살고 있던, 작은 그레타 아스크봄에 대하여 전해오고 있다. 그 여자의 아버지는 감사관과는 친한 사이었다. 그레타는 거듭거듭, 『스베덴보리 아저씨,』제게 천사를 보여 주세요. 하고 바랐다. 그래서 드디어, 그는 승낙했다. 그는 그 여자를 커튼 앞에 세우고 말했다. 『자, 천사를 보렴.』그는 그 커튼을 곁으로 제쳤다. 그러자 그 소녀는 거울 속에 있는 제 모습을 보았다.

 

 

 

『스베덴보리는 저를 찾아오는 여자들이 누구든지 간에, 그를 제 방에 들일 때엔, 그가 부리는 한 사람을 반드시 불러 들였다.』고 로프사암은 말한다. 『누구든지, 부인이 찾아 올 때에는 언제나, 특히, 남편을 잃고 그의 저승 형편을 알고 싶어 하는 남은이가 올 때에, 또는, 그는 점쟁이로서 놀라운 비밀과 도둑맞은 일 같은 것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인이 올 때에는, 꼭 누군가가 마침 그 자리에 있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능갈맞고, 내가 여자들과 친밀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 하는 두려움도 있고, 거기에다, 이런 자들은 듣고 있는 것을 알맞게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고, 그는 말했다.』

 

 

로프사암은, 스베덴보리의 나날의 삶을 잘 디 잔 데까지 무척 많이 말하고 있다. 그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책을 썼다. 『졸리면 나는 잡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가 부리는 이들의 시중을 그리 원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의 잠자리를 보살피고 기다리는 동안에, 큰 물병을 놓아두었다. 그는 글방에서 커피를 끓여, 낮이건 밤이건, 늘 거기에 설탕을 매우 많이 넣어서 마셨다. 초대를 받지 않았을 때에는, 펄펄 끓인 우유 속에 둘둘 말은 빵을 담가서 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는 결코 포도주도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저녁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먹을 때에는, 자유롭게 먹기도 하고, 사귐을 위해서 알맞게 잔도 들었다.

 

 

『글방의 불은, 가을에서 겨울을 날 때까지 절대로 꺼지지 않도록 했지만, 그의 잠방(침실)에는 불이 없었다. 그는 누우면 날씨에 따라서 서너 장의 양털가죽으로 몸을 덮었다. 눈을 뜨면, 곧 글방에 들어가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장작불에, 장작이나 자작나무껍질 두세 장을 넣었다. 그는 그런 것을 여러 단 사 두었는데, 그것은 불을 빨리 피우고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이었다. 그때에는 커피에 우유도 크림도 넣지 않고서 마셨다. 그것이 끝나면 그는 일에 들어붙었다.

 

 

그의 방은 쭉 고르고(整然하고)우아하였지만, 꾸미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의 옷차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때로는, 그가 밖으로 나가고자 할 때, 만일 누군가가 그를 봐 주지 않으면, 늘 곁에 두고 쓰던 것을 잊든가, 등한이 하는 일이 있었다. 어떤 때에, 그가 로프사암의 아버지 집에서 먹기 위하여 왔을 때, 한편 발에는, 잠그개가 보석인 구두를 또 다른 발에는, 잠그개가 은인 구두를 신고 있어서, 젊은 딸들은 때를 만난 듯이, 늙은 신사를 보고, 뱃살을 쥐고 웃었다.

 

 

그는 유쾌하게 즐겁게 사귀고, 그 벅찬 글 씀에서 벗어나 쉬는 것으로, 지식 있는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것을 즐기고, 언제나 그들의 환대를 받고, 또 매우 존경도 받았다. 그는 자기가 일의 참 모습을 살피고 있을 때에, 거기에 여러 번 제멋대로 뛰어 들려고 하는 종류의 별난 즐김(호기심)을 알맞게 다루어, 실떡거리면서, 그것 말고 다른 쪽으로 돌릴 수가 있었다.』

 

그가 홀몸이었던 것은, 하고 로프사암은 말하는데, 성에 대하여 등한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뛰어난 이성과 지혜가 있는 부인과 사귀는 것을, 기쁨의 가장 순수한 근원의 하나라고 값 친 그였지만, 그 깊고도 먼 책을 쓰는 데는, 그 집에 낮이나 밤이나, 완전한 고요함이 꼭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의 건강은 너무나 좋아서, 거의 한 번도 불쾌하게 될 때가 없었다. 『그는 언제나 제게 또 제 경우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데서 복되고, 아니 가장 높은 층의 복된 삶을 보냈다.』

 

그는 1766년[78세]에서 1768년[80세]에 걸쳐, 「혼인사랑」에 대하여 썼으며, 거기에서 천사들의 복 받음과 평안을 말하고 있는데, 그 동안 그는 그런 복된 형편에 있었다.

 

땅위에서는 누구하나, 아직도 참된 혼인사랑의 기원과 성질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 비밀이 가장 높은 하늘나라 천사들을 써서 내게 보여 주었다고 그는 말한다.

 

한 짝의 하늘나라 부부가 황금시대에 하늘나라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전차(탱크)를 타고 내려왔다. 그것은 눈처럼 흰말이 끌고, 그 수레 안에 있는 두 사람은, 손에 산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 하늘나라에서 스베덴보리는 양피지 한 장을 받았는데, 그 위에는 하늘나라에 관한 지혜의 말씀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책상 위에 놓이고 곧바로, 방은 닫혔지만, 열쇠를 그에게 넘겨주면서 그에게 명하였다. 『적으세요.』(「혼인사랑」4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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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80세]봄, 그 책을 다 끝내고 5월 27일, 그것을 오란다 에서 찍어내기 위하여, 스베덴보리는 본국을 떠났다. 막, 그가 마차를 타고 집을 떠나고자 할 때, 그는 카르르 로프사암을 만났다. 『곧 여든 살이 되는 몸으로, 어떻게 그러한 긴 여행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고, 두 사람은 다시 이 세상에서 만날 수가 있을지를 걱정하면서, 로프사암은 그에게 물었다. 『그 일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했다. 『만일 당신이 살아 계신다면, 우리들은 꼭 다시 만납니다. 나는 한 번 더, 이런 길을 떠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훗날에, 그의 아주 열렬한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될 사람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이 뱃길에서 이었다. 그는 육군소장 크리스천 탁센 이고, 덴막에 있는 엘스노레 항구의 세관에서 검열 관장이었다. 이 항구에서 발트 해와 대서양의 항구 사이를 오가는 배는 검열을 받기 위해서 머물러야만 했다. 탁센은 몇 년 동안, 덴막 왕의 비밀 명령을 받고서, 러시아에 관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스베덴보리를 알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랐다. 탁센은 친한 벗이며, 덴막에 있는 스웨덴 대사인 카르르 후레데릭 폰 헤프켄 남작 - 수상 안델스 폰 헤프켄의 동생 - 은, 스베덴보리는 유럽 주에서 가장 큰 학자의 한사람이라고, 그에게 잘라 말했다. 이러한 보고로, 탁센은 그 스웨덴 대사에게, 스베덴보리가 엘스노레 항구에, 이번에 오는 때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 나서 곧, 그는 이름난 스웨덴 사람이 회식을 위하여 그 대사의 집에 있는데, 만약에 당신이 그를 만나고 싶다면, 서둘러서 와 주기를 바란다. 바람이 순해서, 그들은 곧 배를 타겠금 되어 있다, 고 알렸다.

 

『할 수 있는 대로 서둘러 왔습니다,』고 탁센은 말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그 이름난 손님에게, 조금만 물어보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스베덴보리는 곧 따라 주었다. 『무엇이든지 물어 주세요, 무엇이든지 진실하게 대답하겠습니다.』

그가 맨 처음에 물은 것은, 벌써 말한 스베덴보리와 스톡홀름에 있는 왕비와 나는 말의 내용이었다.(192쪽 참조)

 

탁센은 정보부에서 일한 것이 도움이 되어서, 그가 스베덴보리에 관해서 적은 것은 아주 자세하다. 그들이 종교의 원리에 관하여 말을 나누고 있는 사이에, 탁센은 그에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다하였다고 믿는 사람은, 구원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닌가, 고 물었다. 스베덴보리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만 십계명을 따라서 저 자신과, 저 자신의 생각을 낱낱이 검사하기만 하면 좋습니다. 말하자면, 자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자기는 남의 행복을 보고 행복을 느끼고, 그 사람들을 새암 하지는 않는지를, 다른 이에게서 큰 위해를 입고서, 성냄과 원수 갚을 생각이 일어났지만, 나중에, 원수 갚은 일이 내게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감정을 바꾸는가, 아닌가, 하는 것을, 낱낱이 검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때 그는, 제가 하늘나라를 바라보면 걷고 있다고 굳게 믿고, 마음을 평안하게 하여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 스스로 거기에 거슬린 감정에 따라서, 현실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는 지옥을 향하여 걷고 있습니다.』

 

『이 일은, 내게 다른 사람의 일만이 아닌 제 자신을 생각하게 하였다.』고, 탁센은 주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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