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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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섭리에 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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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14.12.219
주님이 섭리에 대하여

 

천계와 지상의 주님의 다스림(통치.government)을 섭리(providence) 라고 부른다.

사랑에 속한 모든 선이나 믿음에 속한 모든 진리는 주님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전적으로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은 전무하기 때문에, 이것에서 밝히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신령섭리는 인류구원에 이바지 하는 개별적인 것이나 전체적인 것들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서에서 이렇게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1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15:4,5)

 

더욱이 주님의 신령섭리는 사람의 생명에 속한 진정한 개별적인 것들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주님을 가리키는 생명의 유일한 샘이 있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살아가고, 행동하고,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적인 것들로 말미암아 신령섭리에 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들로 인하여 내리는 결론은, 그것은 오직 우주적인 것(보편적인 것)이고, 그리고 그 각각의 개별적인 것들은 사람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은

 

천계의 비의를 터득하지 못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와 같은 결론들을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에서, 그리고 그 사랑의 쾌락에서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악한 자가 명성이 뛰어난 것을 볼 때 , 또한 선한 자에 비하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악한 자가 그들의 솜씨에 일치하여 성공 출세

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마음속에서, 만약에 신령섭리가 개별적인 것이나 전체적인 것들 안에 있다면, 그와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은 신령섭리가 덧없이 무상하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의 생명과 함께 하나의 목적인 된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남는 것에 주목하고, 따라서 끝이 없는 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끝이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제때에 당당하게 깊이 생각하는 자들은, 이 세상의 명성이나 재물 따위가, 비록 그런 것들 안에 있는 기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그것들을 그렇게 부른다 해도, 신령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소멸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것은 수 많은 것들을 속이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천계로 부터 그것들을 외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계에 있는 생명이나 거기에 있는 행복은 신령존재에서 비롯된 진정한 축복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주님께서 누가복음서에서 가르치셨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누가복음12:33,34)

 

악한 자가 그의 역량에 일치하여, 발전, 성공, 하는 이유는 모두가 이성에서, 그리고 또한 자유로 말미암아서 그가 행한 것을 모두가 행하여야 한다는 것은 질서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그의 이성에 일치하는 자유의 상태에서 행동하는 것이 사람에게 남아 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수용하기 위한 처리는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것은 사람의 자유의 상태에 있을 때 그리고 그의 이성의 조요의 상태에 있을 때, 주입, 흡입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선으로 말미암아 강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사람에게 고수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 상태에서 행한 것은 사람의 고유속성이 된다. 왜냐하면 의지에서 비롯된 것은 자유로 말미암아 행한 것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의지는 그 사람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사람이 악을 행하기 위하여 자유 안에 있다면, 주님에게서 비롯된 선은 그 사람을 위하여 장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의 자유로 말미암아 악을 행하는 것에서 떠난다는 것은 이른바 용인(허용)이라고 한다.

 

사람의 역량에 의하여 이 세상에서 행복에 인도된다는 것은 마치 그의 명민으로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는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령섭리는 계속적으로 악에서 부터 용인에 의하여, 그리고 계속적으로 악으로 부터 물러남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동반한다. 그러나 천계에서 행복에 인도된다는 것은 사람 자신의 명민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그리고 그렇게 지각 된다.

 

그 이유는 그와 같은 일은 주님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고, 그리고 선에게로 계속 인도하고, 처리되는 것에 의한 주님의 신령섭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의 자연적인 빛으로 말미암아 서는 파악, 이해할 수 없는 경우다. 왜냐하면, 이 빛으로 말미암아서는 신령질서의 법칙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지하여야 할 사실은 섭리와 예견이 있다는 것이다. 주님에 의해서 장만되는 것은 선이고, 이에 반하여 악은 주님에 의하여 예견되는 것이다.

전자는 후자와 대립적인 관계다. 왜냐하면,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은 악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고, 그러나 주님에서 비롯되는 것은 선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0773-10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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