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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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이제는 허락 되었다(Nunc Licet)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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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허락 되었다(Nunc Licet)

 

스베덴보리가 1771년[83세] 6월에 완성한 「참기독교」는 1757년[69세]의 첫머리에서 끝 무렵에 이르는 꼬박 1년 동안을, 영들의 세계에서 해낸 마지막 심판 후에 영계에 이루어진 새로운 참 기독교의 하늘나라에서 믿어 받들게 된 가르침의 뜻의 대강이며, 그가 그 책의 779번에서 말해 밝히는 것 같이, 그가 그 부름 받은 첫날부터 말씀을 읽는 동안에, 주님만이 보여준 깨끗하고 올바른 기독교의 아니, 참된 종교의 가르침을 계통 있게 온통 하나로 묶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참된 종교의 가르침에 관한 진리의 큰 봉우리가 눈에도 아득히 끝도 없이 다음에서 다음으로 이어진 큰 산줄기들이 보인다. 그 산줄기들 속에 감추어진 금광, 혹은 은광, 또는 구리광을 찾아내는 데에는, 그 큰 봉우리를 기어오르는 수고를 마다하여서는 안 된다. 수고는 반드시 그런대로 그 값을 받게 된다.

 

스베덴보리가 그 정신과 혼을 기울어서 맞선 대상은, 실로 주님으로 우러러 받든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뒤에, 새로 세워진 교회 안에 침범하여 들어온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마태복음 24장 15절)이었다.

 

그 가르침은 말하자면 「값없는 잡동사니 무더기」일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잡동사니 무더기」가 「잡동사니 무더기」로 되려면, 이성의 빛을 끝까지 제쳐버리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번 이성의 빛을 받아서 이것을 따져보면, 그 「잡동사니」의 본바탕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에 사는데 는, 곧 그 「잡동사니」를 믿고서 구원을 받는데 는, 곧 하늘나라에 들어가 구원을 받는데 는, 밑간 데까지 이성을 제쳐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성은 믿음의 종이다. 이성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지 아니하는 것이야 말로, 곧 거스름(역리)과 맞질림(모순)이야말로 믿음의 길이라고 부르짖기 까지 하였다.

 

이에 대하여 스베덴보리는 , 「믿음」이란 진리이며, 진리이기 때문에, 그것은 이성에 의하여 확인될지언정, 이성과 맞서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잡동사니 무더기」를 믿는 믿음에서 이성의 해방을 선언 하였다.

 

바야흐로, 「마지막 심판」뒤에 영계에 새로 세워진, 「새로운 참 기독교회」와 함께 「믿음」곧 진리의 내용에 이성과 지혜를 가지고 들어가는 때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큰 책의 508 번에 적은 것을 좀 따오자.

 

『어느 날, 나는(영계에서) 굉장하고 화려한 신전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네모꼴을 하고 서 있고, 그 지붕은 왕관 같은 꼴을 하고, 한 가운데는 활 같은 꼴을 하고, 툇마루는 높고, 벽은 수정으로, 문은 진주로 되어 있었다. 안쪽에는 남동쪽에 강단이 있고, 그 위의 오른쪽에 놓여 있는 말씀에서 비취는 빛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신전 한 가운데는 신당이 있고, 그 막은 뒤로 끌리고, 검을 휘두르는 황금 그룹이 보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 뜻을 직각적으로 알아 차렸다. 신전은 새 교회를 진주문은 그 교회 들목을, 수정으로 된 벽은 그것을 비추는 모든 진리를 강단은 제사 계급과 설교를, 강단에 빛이 차고 넘치게 하는 말씀은 그 안의 , 또는 영의 뜻을 그 신전 한 가운데 있는 신당은 그 교회와 천사들이 사는 하늘나라와 맺어짐을 황금 그룹은 말씀의 글자 뜻을 뜻하고 있다. 검을 휘두르는 것은 바야흐로 말씀을 열어 보이신 것을 뜻한다. 내가 더 가까이 가니까, 문 위에 「이제는 허락 되었다」(Nunc Licet)고 적힌 것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믿음의 비밀을 바야흐로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새 교회에서는(믿음의)모든 비밀이 분명하고, 그것들을 환하게 이해하고, 또 그것들을 말씀으로 다짐하는 것이 허락된 것이다. 그 까닭은, 그 많은 가르침(교의)은 주께서 말씀으로 열어 보이신 진리의 사슬이요, 그것들에 대한 이치에 맞는 증명은 이해를 더욱더 발전시켜, 그것을 높이 올려서 하늘나라 빛 가운데 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 빛 가운데에, 주님을 하늘과 땅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 모든 영광으로써 빛나는 것이다.

 

이것이 신전 문 위에 적힌 (Nunc Licet)로 , 또 신당 안의 그룹(스랍)앞에서 젖혀진 막으로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오류)은 이해를 막히게 하지만, 진리는 이것을 연다는 것이 새교회의 일정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잘못(오류)의 잡동사니」를 잡동사니대로 세우기 위하여, 이성을 「잡동사니 무더기」에서 따돌리고, 뼈만 남은 기독교회의 실지 모습이 알몸 그대로 영계에 까발리고 있는데, 이제 같은 책 185번에 적힌 것을 조금만 들겠다.

 

『영계에는 마치 자연계에서와 같은 기후나 지대가 있으며, 영계에 있지 않는 것은 무엇하나 자연계에도 있지 않는데, 그러나 그것들은 그 뿌리를 달리한다. 자연계에서 기후의 변화는 해와 적도와의거리에 걸려 있지만, 영계에서 그것은 따뜻한 사랑(정동. 정애)과 생각의 참사랑과 믿음과의 거리에 따라서 변하고, 그 나중 것에 영계의 모든 것은 상응(대응)한다.

 

영계의 추은 곳에서는, 사물은 자연계의추은 곳에 있는 것을 닮았다. 땅바닥은 얼고, 물은 얼음으로 덮이고, 둘 다 눈에 덮이어 있다. 이 추은 곳은, 자연계에 있으면서 영의 으뜸제목에 관하여 생각 하는데, 또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데, 너무 게을렀던 사람들이 가는 곳이며, 또 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들은 북쪽의 영이라고 불리고 있다. 나는 일찍이, 북쪽의 영들이 사는 추은 지대에 있는 어느 지방을 보고 싶은 소원이 간절하던 중, 그 모든 물이 얼음에 갇힌 북쪽지역에 있는 영들에게로 이끌려 갔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고, 나는 키가 자연계의 사람들과 비슷한 영들을 보았다……. 마침내, 나는 무리가 신전을 향하여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신전은 눈에 덮여서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신전 지기들은 열심히 눈을 치워서 예배하러 오는 이들을 위해서 들목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허락을 받아 그 신전의 안쪽을 보았는데, 그것은 등불과 촛불로 밝혀져 있었다.』

제단은 다듬어진 돌로 만들어졌고, 그 뒤에는 판자 한 장이 걸리었는데, 거기에 본바탕(본질)은 한분 하나님이지만, 인격으로는 세 분인, 아버지, 아들, 성령이신 하나님의 셋이 하나 됨(삼일성)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얼마 안 되어 제단 곁에 있던 한 제사가 세 번 그 판자 앞에 무릎을 꿇은 뒤에, 손에 책을 들고 강단에 올라가, 하나님의 셋이 하나 됨(삼일성)에 관하여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외아들을 낳았고, 떠넘김(전가), 죄무름(속죄), 활동인 그 딸림 성질(속성)* 에서는 나누어짐은 얼마나 큰 신비입니까!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면, 우리들 마음의 보기감각(시각)은 육신의 눈으로 해를 바라볼 때처럼 어두워지고, 중심점(촛점)이 흐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으뜸제목(주제)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우리들의 이성을 믿음에 복종하게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그는 큰 소리로 말하였다. 「아!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그 아들의 의를 떠넘기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은 떠넘김에 의한 의롭게 된 표적을 주는데, 그 표적이란 간단히 말하면, 죄의 용서이며, 새로 나는 것이며, 거듭 나는 것이며, 구원이라고 하는, 우리들의 거룩한 믿음은 얼마나 큰 신비입니까. 이것들의 흘러듦과, 혹은 그 하는 일은, 사람들은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으로 변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또 그것들의 안에 있음(내재)과 또는 그 상태에 관해서도, 사람은 바다의 물고기와 같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 형제들이여, 이 믿음 안엔 보석이 아주 깊이 감추어져서 우리는 그 깨진 조각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도, 우리는 우리의 이성을 믿음에 복종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 「떠넘김(전가), 죄무름(속죄), 활동인 그 딸림 성질」이란, 지금까지의 기독교회에서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아들이신 하나님이 몸을 입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인류를 대신 의를 떠 넘겨서 죄 없다고 선언하고, 죄 없다고 한 자에게 성령을 보내어서 그 죄 없는 자 쪽에서 아무 애씀도 없이, 그 사람을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 」는 아주 관념적이면서, 이상야릇한 가르침(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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