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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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새로운 복된 소식(복음)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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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복된 소식(복음)

 

 

스베덴보리는 그 「새교회 가르침의 손쉬운 풀이(간이해설)」를 쓸 때 깊은 목적이 꿈틀 거렸다. 마태복음 24장 22절*의 말씀을 따라서, 새 교회가 세워지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이 주의해서 그것을 익히 자세히 읽어, 그 가운데에는 벌써 진리를 찾은 이들이 있지만, 나머지는 어디로 갈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영계에서) 알았습니다.』고, 그는 베이엘 박사에게 썼다. 이 책은, 하고 그는 내세우는데, 『지금까지 기독교회를 지배하여 온 신학 모두에 변화를 가져오고, 또 부분으로는, 새 교회에 도움이 될 신학을 내보일 것입니다. 』(암스테르담 1769년[81세] 4월 23일).

 

* 그 환날의 날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구원 얻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사람을 위하여 그 날 수가 줄어질 것이다(새번역 마태 24장 22절).

 

 

스베덴보리는 『그 가운데 써 있는 것은, 앞서 말한 믿음으로 만의 가르침이,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나라에는 전혀 신학이 있지 아니하는 원인이다 는 것을, 누구에게든지 알아듣게 하는데 넉넉합니다.』그래서 이 「손쉬운 풀이」열두 부를 베이엘 박사에게 보내서, 그 신학을 알아주는 이들에게 펴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그 책을 부치기 전에, 요텐 부르이 교회회의 의장이 사정없는 말로 탄핵하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다. - 나중에, 그는 그 의장을 형사 재판에 붙이는 일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베이엘 박사에게 한 부만 부치고, 얼마동안 그것을 당신 곁에 숨겨 두라고 주의 시켰다.

 

『우리들은 그것이 외국에서 알맞은 비평을 받고, 그러고 나서, 스웨덴에서 모두에게 알려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저승에서는 「손쉬운 풀이」가 세상에 나타난 것을 아주 기뻐했다고 적었다. 『이 예비적인 논문*이 완성되었을 때, 온 하늘나라는 동쪽에서 서쪽까지, 남에서 북까지, 짙은 분홍색의 아름다운 장미꽃에 덮여 있는 것처럼 내게 나타내고, 그 때문에 영들의 세계에서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모두다, 그 일에 탄복하였다. 이 일은 새 하늘나라**가 (이 책에)동의하고 또 (그것을)기뻐하는 표가 되었다.』

 

 

이 책에 대하여, 그가 든 것 같은 놀라운 주장은, 아직 누구하나 어떠한 책 쓰는 이도 풀지는 않았다. 참으로 스베덴보리가 적은 『이 책은 성서에 미리 알리고 있는 주님의 다시 오심이다.』『영계에서는, 내 모든 책에 「주의 다시 오심」이라고 적혔다. 나도 이 말씀을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오란다 에서 책 두 권에 적었다.***』

 

이 두 권 중에서 한권은 찾아냈고, 영국 박물관에 간직되어 있다.『이 책은 주님의 명령으로 적은 주의 다시 오심이다』고 하는 글자는, 그 표지안쪽에 스베덴보리 자신의 글씨로 적혀 있다.

 

 

*. 「예비적인 논문」이란 「손쉬운 풀이」를 가리키고,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쓴 큰 작품인 「참 기독교」의 예비로 쓴 책이다.

 

**. 「새 하늘나라」는 1757년 한 해에 걸쳐서, 영들의 세계에서 행한 마지막 심판 후에, 영의 세계에 대로 세워진, 「새 기독교의 하늘나라를 가리킨다.」

 

***. 타펠 박사 엮음 「문서(文書)」제 2권 757.

 

이 논문에서 스베덴보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개혁파 교회의 가르침을 쪼가름(분석)하여, 하나님, 구원, 믿음의 본바탕에 관한 두 교회의 가르침을 물리치고 있다. 『오늘의 기독교계 신학 모두는, 삼인격의 삼일성이라는 가르침에서 일어나서, 세 사람의 하나님 관념에 바탕하고 있다.』이 생각은, 하고 그가 밝히는 대로, 종교를 내 쫓아 버리고, 또 이 가르침은 참된 인자(仁慈)를 제쳐버림으로, 교회가 참으로 착한 일을 낳은 것을 할 수 없게 한다.

 

이 잘못된 믿음에, 참 믿음의 대략 줄거리가, 그 마지막 장에 새 하늘나라와 새 교회의 믿음으로써 맞비추어 들고 있다.

 

「손쉬운 풀이」는, 이 처럼 대작인 「참 기독교」의 미리알림이었다. 그는 그 머리맡에, 이것은 큰 지음의 한 대강 줄거리이며, 그 예비로서 제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논문은 다른 모든 지음보다 더 나아서, 신학의 전문 과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베이엘 박사에게 이렇게 썼다. 『여기에 적힌 것은, 요텐 부르이에서는 당신 말고는, 거의 다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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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80세]봄, 스베덴보리는 파리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혼인사랑」을 다룬 책은 좋은 평으로 환영을 받아서, 많은 책을 요구 하였다.

그는 거기에 다다르자, 소르본느 대학의 샤브리- 박사에게 「참 기독교」의 처음 초벌 원고를 내 놓았다. 박사는 출판을 위하여, 그것을 따져 살피기(검열)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샤브리- 는 그것을 읽고 나서, 스베덴보리가 『관례대로 그 표제 쪽에, 이 책은 런던이나 암스테르담, 그 어느 곳에서 인쇄하였다고 적기만 하면, 그것을 파리에서 내어도 좋다는 묵인』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이러한 방법은 스베덴보리의 행동원칙에 어긋나고, 그래서 그는, 그런 조건에 동의하지 않고, 그것을 다른 모든 후기 작품처럼, 암스테르담에서 인쇄하기로 하였다.(이 정보는 「참 기독교」의 처음 프랑스판을 엮은이들에게 샤브리- 스스로 낸 것이다).

 

 

파리에서는, 스베덴보리는 그가 늘 하던 대로 하지 않고, 남자 부림꾼을 써서 몸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이 부림꾼은, 제 주인마님이 모든 문에 자물쇠를 잠그지 않는다는 것을 투덜거리고, 이런 주의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는 틀림없이 두둑의 죄로 고발되어, 죽을 고비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하였다. 스베덴보리는 웃으면서, 당신에겐 나들문에 더할 나위 없이 믿을 수 있는 천사가 지켜주고 있으니까, 그 일 때문에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고, 말하였다. 문에는 여전히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았으며, 또 아무것 하나 없어지지도 않았다.

 

 

 

런던에서 스베덴보리는 알맞은 숙소를 찾으려고 골드 바스 휠쯔에 다시 가서, 전에 신세를 진 여자 주인을 찾았는데, 그 여자는, 그를 같은 곳에 있는 그의 친구인 리처드 샤스미스에게 소개 하였다. 그는 덧머리(가발)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 웰크로스 거리구역, 그레이트 바스 스트리트 26번지에 살며, 집을 세놓았다.

 

샤스미스 집은 작은 아이들 몇을 거느린 젊은 부부로, 엘리자베스 레날즈라고 부른 하녀가 있었다. 그들은 기뻐하며 이 귀한 신사를 주 5시랑에, 앞에 거처방이 있고, 뒤에 침실이 있는 2층을 쓰게 했다. 이렇게 정한 것은, 양쪽 모두에게 아주 만족스러웠고, 이 스웨덴 학자는 그 가족이 기뻐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작은 책 몇 권을 내고, 또 큰 작품인 「참 기독교」를 쓰면서 바쁜 여름을 보냈다.

 

 

여기에서도 스톡홀름에서와 같이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동포인 크리스토퍼 스프링겔과의 옛 사귐을 새롭게 하였다. 이름난 의사인 하즈밴드 메스이타가 두세 번 그를 찾아왔다. 그는 토마스 하트레이 목사와 윌리암 쿡크와즈이 처럼, 이 새 가르침을 하늘나라에서 보여준(계시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쿡크와즈이는 몸놀림이 고상하고, 맘끄는 힘이 있는 사람이고, 사람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이나 슬기가 넘치는 것으로 이름났고, 거기에 퀘커파 신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 10년 후에 아내를 잃고, 쇠몽둥이로 딸들을 내리 눌렀다. 그는 타고난 성질이 괄괄하고 성급하여, 『가벼운(경박한)옷차림이나 화려한 모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참을성은 끝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스티픈 패니가 1760년 [72세]과 1764년 [76세]사이의 어느 때에, 그의 주의를 스베덴보리가 쓴 한 책에 돌리게 하였을 때, 그는 그것을 펴 들었지만, 그 때엔 그것을 미워한 나머지 그것을 던져 버렸는데, 어떤 까닭으로, 또 한 번, 그것을 읽기 시작하였다. 이 성실한 사람 마음에 하소연한 것은, 아마 하늘나라가 남을 섬기는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든가, 또는 스베덴보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참 성질을 설명한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그는 읽어감에 따라, 점점 이 새로 보여준 진리를 굳게 믿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그는 노산프톤샤 윈윅크의 목사, 토마스 하트레이를 알게 되고, 새 교회의 가르침에 관하여 긴 글의 편지를 나누었다. 하트레이는 정이 아기자기한 바탕(기질)의 사람이었으나, 소심하여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친히 서로 만날 때까지, 오래오래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편지로써 서로서로 생각을 나누는 동안에 마음이 굳게 맺어져서, 처음으로 그들이 만났을 때에는, 오래 전부터, 잘 알던 사람처럼, 서로 서로의 품에 뛰어들어 껴안고, 이때부터 함께 힘을 모아서 기쁨으로 또 열렬하게 새로운 소식을 넓혀갔다. 쿡크와즈이의 격한 타고난 성질은, 해가 지나면서 부드러워졌고, 화려한 작은 모자도, 온화하게 딸들의 머리에 놓이고, 그 거친 타고난 성질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기독교의 참을성이, 앞서 좁은 마음을 대신하였다. 『지금껏, 내가 알지 못한 가장 마음의 아기자기하고, 학문이 있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그 전기를 쓴 사람은 말한다.

 

하트레이와 쿡크와즈이가, 스베덴보리를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의 사귐은 즐거웠다. 그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하였으며, 찾아간 이들은 매우 만족하였다. 그들은, 그를 식사에 청하였지만, 이미 제 식사가 마련되었으니까 잘 봐달라고 빌었다. 그것은 다만 빵과 우유뿐이었다.

 

하트레이와 쿡크와즈이는, 그 새 가르침이(계시가) 중요하다는 것이 마음속에 새겨져, 두 사람은 곧장 스베덴보리가 지은 책 가운데서, 몇 권을 영어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쿡크와즈이는 「생명의 가르침」을 옮기어, 다음 해에 프리마스에서 그 책을 냈다. 하트레이의 도움을 얻어서, 제 돈으로 백 파운드를 들여서, 「하늘나라와 지옥」을 영어로 옮겨서 냈다.

 

하트레이도 다른 여러 논문을 옮겼다. 런던에 살던 프랑스 사람 외과의사인 베네디 샤스테니에 도 스베덴보리가 쓴 신학 책에 관심을 두고 읽은 사람들의 모임을 열었다. 그는 신학책 가운데서 많은 것을 프랑스 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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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는, 이번에는 「영혼과 몸의 주고받음(교류)」이라는 제목으로, 작은 책을 냈다. 이것은 몇몇 사람에게는, 철학자 칸트에게 약속했던 대답이라고 생각 되었는데, 칸트는, 과학과 종교에 확실한 밑바탕(기저 基底)을 붙박으려고 해 보았지만, 그것은 종잡을 수 없고, 난잡하였다. 스베덴보리는 이 작은 책에서, 영혼과 몸의 걸림(관계)을 풀었는데, 철학의 인식론을 배우는 무리에게는, 뺄 수 없는 논문이오, 더구나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였다. 영혼과 몸이 어떻게 결합해서 움직이는가 하는데 는, 세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 몸의 깨닫기가(감각) 생각(사고), 또는 알아차림(인식)을 낳는다는, 잘못된 가정에 바탕을 두고, 『영적인 흘러듦』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생각은, 몸의 깨닫기보다도 순수하고 내적인 영혼이 몸에 깨닫기에 흘러들 때, 거기에서, 생각 또는 알아차림을 낫는다는 진리에 서 있고, 세 번째 생각은, 『선정적(先定的 조화』라고 불리는, 영혼과 몸의 깨닫기가 같은 때에 움직여서, 생각 또는 알아차림을 낳는다는, 『물리적인 흘러듦』과 『영적인 흘러듦』의 중간 맞춤하는 논리이고, 넷째 생각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알아차림이 생기는 데는, 영혼이 몸의 깨닫기에게로 움직이든지, 또는 몸의 깨닫기가 영혼에게로 움직이든지, 또는 둘이 끊임없이 함께 하여서 움직이든지, 그 어느 것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는 더 나아가서, 영적인 흘러듦의 생각은 진리이지만,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흘러드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그릇이 다고 말한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말로 맺는다.

 

 

『영혼에서 몸으로 흘러드는 영적인 흘러듦이, 이 일을 다룬 사람들에 의하여 추론되고는 있지만, 하나님에게서 영혼에 흘러들고, 영혼에서 몸에 흘러드는 영적인 흘러듦은, 추론되어 있지는 않다……. 그런데 나는 영계와 자연계에 같은 때에 있을 수 있게 하여 주셨기 때문에, 나는 내 양심을 따라 이 일들을 전할 책무가 있는데, 지식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무슨 도움이 되리오……. 그것은 영의 탐냄(탐욕)이다.』

 

이 간단하고 똑똑하여 뛰어난 논문에서, 특히 알아차림의 문제에 관심을 품은 철학 도에게 중요한 것은, 몸의 깨닫기가 움직이는 그것이, 영혼의 깨닫기를 처리하는 것은 영혼의 지적 능력 이 다고 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마음이 대상에서 깨닫기관에 일으키는 형편에 따라서 그 깨닫기관에 흘러들어, 그 형편을 뜻대로 처리한다』(「주고받음」1 번). 이 말은 바로 이것의 내용을 밝히 가리킨다.

 

 

스베덴보리는 같은 책 19번에, 이 알아차림의 문제를 아리스토텔레스 , 데칼트, 라이프니츠의 제자들이 제각기의 처지에서 영계에서 토론한 흥미 있는 일을 싣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처지에서, 이 문제를 크게 논하고 나서, 생각이 뒤죽박죽되어, 어느 것이 좋은지 제비뽑아 정하기로 하고, 제비가 데칼트의 생각인 『영적 흘러듦』이 뽑혀서, 모두가 그것을 쓰기로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한 천사가 나타나서 그들에게 진리가 제비를 뽑은 자의 손에 의하여 똑똑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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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 [81세] 여름, 스베덴보리가 영국을 여행하였을 때의 특별한 목적은 「손쉬운 풀이」를 영국말로 옮겨서 펴기 위해서였다. 실제 사무적인 영국 사람이, 시간 걸리면서 라틴말로 된 논문 읽기를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 중요한 예비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스베덴보리는 번역하는 이를 샀다. 그는 아마도, 몇 년 전에 「하늘나라의 비밀」의 둘째 권을 옮긴 존 머챤트 일 것이다. 이 작은 책은, 존 류스를 뒤이은 사람이 인쇄 하였다.

 

메스이타 박사는 이 영국말로 옮긴 것을 펴는 것으로 스베덴보리를 돕고, 에덴바라, 그라스고, 아비디안 각 대학의 여러 신학박사에게 빼어난 편지를 써서 이 책을 추천했는데, 그 편지는 그 교수들의 점잖은 회답과 함께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이 회답은 그 교수들이 그 책을 읽기 전에 쓴 것이다.

 

토마스 하트레이 목사는 벌써 메스이타 박사와 함께 스베덴보리를 찾아뵀는데, 이 풀이에 매우 감동하여, 긴 글로 된 편지를 스베덴보리에게 보내서 기쁨과 놀라움과 고마움을 나타내면서 신학의 여러 문제를 물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대답하였으며, 이 대답은 뒤에 『토마스 하트레이 목사가 내 놓은 삼일성에 관한 아홉 개의 물음*』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 이 아홉 개의 물음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대답은 「주 예수 그리스도 , 그 인격과 죄무름(속죄)에 관하여」의 끄트머리에 적어 넣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스베덴보리가 「영국을 떠난 뒤에 메스이타 박사가 그렇잖으면 내가 또는 우리 둘이서, 세상에 당신이 지은 책을 두둔하여야 할 일이 만의 하나라도 일어날 경우, 당신이 우리들 앞에, 당신 자신에 관하여 대학의 당신 학위, 당신의 맡은 일, 벗들 친척, 당신이 받은 명예, 그 밖에도 무엇인가 써 두는 것이 당신에게는 좋지 않겠습니까.」제안하고, 다시 「만일 당신이 스웨덴에 돌아가서, 당신 종교 때문에 족쳐 해침(박해) 이라도 당신 몸에 내리 덮인다면, 그 때에는 영국에 돌아오십시오. 메스이타 박사와 나는, 알맞은 곳과 집을 당신을 위하여 마련해서, 당신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있어야 할 것은 다 마련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조금도 귀찮지 않고, 도리어 우리들에게 더 없는 기쁨입니다.」고 하는 뜻을 썼다.

 

스베덴보리는 9월 초에 배를 타고 스웨덴을 향하여 떠나기에 앞서서, 그 편지에 회답하는 글을 써 보냈는데, 그것은 『토마스 하트레이에게 보낸 손숫글(친서)』이라는 제목으로, 그

목사가 「영혼과 몸의 주고받음」을 영국말로 옮긴 것에 끼워서 일반에게 알려졌다.

 

스베덴보리는 그 손숫글에서 대답하였다.

 

『당신이 그 편 지속에서 보여준 우정에 나는 매우 기뻐하며, 단신 두 사람에게, 특히 당신의 우정에 마음에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칭찬하는 말로 나를 압도하지만, 그 말을 나는 단지 내 책속에 들어 있는 진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모두 참된 것의 근원이신 주님께 돌려보냅니다. 주님께서 바로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14장 6절).』

 

 

그는 하트레이 목사가 메스이타 박사와 자기 앞으로, 그의 생활과 맡은 일의 자리 따위에 관하여 무슨 특별한 일을 써 두는 것이 그에게는 이롭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나는 그 일을 잘 생각한 뒤에 당신의 친절한 충고를 따를 기분이 되었으므로, 내 평생에 관하여 좀 자세하게 전하지요』라고 대답하고, 그 다음에 그 평생을 민 그림(데생)하고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맺었다.

 

『당신의 편지로 내가 이런 자세한 일을 모두 쓰고 싶은 기분이 된 것도, 당신도 말했지만 「마음에 품은 나쁜 치우친 생각을 없애기 위함입니다.」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참 마음으로 당신이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복을 모두 다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우리들의 주님을 우러러 , 그 분에게 기도 한다면 그것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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