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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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 친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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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 있는 한 친구

 

 

암스테르담에서 새로 지은 「혼인사랑」의 인쇄는 빨리 되어갔다. 그것은 1768년[80세]9월이 끝날 무렵에 다 되었다. 10월 1일에는, 스베덴보리는 그 한 부를 베이엘 박사에게 드릴 수 있었다. 이 신학 책에, 그는 비로소 지은이의 이름을 적고, 그 겉 제목에는 「스웨덴의 임마누엘 스베덴보리 지음, 혼인사랑에 관계되는 지혜의 기쁨과, 간통사랑(간통애)에 관계되는 미친증(광기)의 쾌락」이라고 적었다.

 

 

11월 4일,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 책방에서 스베덴보리는 가끔 거리에서 지도적인 사람인, 상인이면서 은행가이기도 한 존 크리스천 크노-를 만났다. 그 처음의 만남이 상인에게 기분 좋은 것이어서,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되어서, 크노- 는 스베덴보리의 사람됨을 아주 자세히 적어 두었다.

 

크노-는 타고난 알고 싶기로, 스베덴보리에 관하여, 그 거리에 있는 스웨덴 사랏스 교회 근처에 있는 두 방이 이어진 거처로 스베덴보리를 찾아뵈었으며, 그 뒤 겨울 동안은, 교회의 예배에 갔다가 거기에 들리는 일이 버릇처럼 되었다.

 

그가 스베덴보리에게 처음으로 알아본 것은, 어째서 당신은 여행하는 동안, 부릴 사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당신을 시중들게 하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스베덴보리는, 내게는 천사가 늘 같이 있기 때문에, 내 시중을 들사람은 한 사람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고 대답을 하였다. 크노-는 말한다.

 

 

『만약에 다른 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면, 나는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든한 살이나 되는 이 귀한 분께서 내게 그런 말을 하였을 때, 우습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상하리 만치 순지해 보였고, 그 부드럽게 엷은 웃음을 띤 푸른 눈으로, 나를 눈여겨 볼 때에는 - 그는 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그러한 눈으로 그렇게 나를 보았지만 - 마치 진리 그것이 그 눈에서 말을 걸어오는 듯하였다. 그는 거리의 젊은 사람들 곁에 살았는데, 그 사람들은 가게를 갖고 있어서, 거기에서 사라사 무명과 모슬린, 손수건 같은 것을 팔고, 아주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가 사는 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그 늙은 신사에게 손이 많이 가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아니오, 언제나 조금도 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했다. 「하녀가 그 분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침마다 화로에 불을 피워드리는 것뿐입니다. 밤마다, 일곱 시에는 자리에 들고 차임에는, 여덟시에는 일어납니다. 이것 말고 더 그 사람 때문에 마음 쓰는 일은 없습니다. 낮에는 그분 스스로 불을 때고, 자리에 들 때에는 매우 정신 차려서 불을 끕니다. 그 분은 아주 혼자서 옷을 입고 벗으며, 무엇이든지 제 일은 제가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집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분께서 평생 동안을 우리들과 함께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분이 안 계신다면, 가장 쓸쓸해 할 사람은 우리 아이들이겠죠. 그 분은 밖에 나가면 반드시 단 것을 가지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개구쟁이들은 그 늙은이를, 제 부모보다 더 사랑할 만치 그 분을 따릅니다. 저분은 틀림없이 큰 부자일 겁니다…….」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생활하고(이렇게 크노-는 이어서 써 나아간다), 보통의 점심으로 그 방에 초콜릿과 비스킷을 가져갔지만, 그 거의 반은 늘 그 집주인 부부와 아이들이 먹었음이 틀림없으리라. 만일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나면, 그는 가까운 요릿집에 갔다……. 그는 퉁명스럽거나, 변덕을 부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 누가 부르면(초대하면) 일 물리치는 일도 없었다. 이따금, 제 나라사람들과 함께 먹기(회식)도 하였다. 거의 일요일 마다 브렛트만 씨의 집에서 먹었다. 그도 또한 그와 친하게 사귀었다……. 스베덴보리 씨는 움직임이 매우 재빠르고, 신분이 낮은 자에게나 높은 자에게 말하는 방법을 알았다. 나는, 그가 자기는 이따금 옴부레- 화투놀이의 한 종류-를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꼭 그를 우리들 한패에 소개하고 싶었지만, 그는 일곱 시가 지나서는 결코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거기에다 우리 한 패에서는 프랑스 말은 그저 조금밖에, 독일 말은 전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일은 그만 두었다. 같은 까닭으로 그를 꼭 만나보고 싶어 하는 어느 부인들의 알고 싶기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번은, 내 친구 니코람 코나우 부인의 간절한 바람으로, 그를 만찬에 데려가기로 하였다. 그 늙은 신사는 기쁘게 받아 들였다. 코나우 씨는 마차를 보냈다. 부인의 집에서 우리들은 여러 손님 가운데서도, 특히 후 -그의 두 따님을 만났다. 그 따님들은 교양이 넘치고, 참으로 높은 경지의 과학을, 특히 철학을 배워서, 보통 부인의 수준을 넘는 분들이었다. 스베덴보리 씨의 태도는 보통 때보다 점잖고 또 기품이 있었다. 우리들은 테이블에 옮겨 앉게 되어서, 나는 부인을 식당으로 안내하려고 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여든한 살의 청년은, 새 장갑을 끼고 손을 후-그 양에게 내밀었는데, 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것같이 보였다. 그는 부름 받을 때엔, 언제나 검은 비로도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었지만, 보통은 밤색 윗저고리와 검은 색 바지를 입었다. 나는 그 두 가지 말고 다른 옷을 입은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 늙은 신사는 코나우 부인과 후-그 양 사아에 앉았는데, 그 부인들 두 사람은, 말하는 법을 익히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리 그 두 사람에게, 당신들은 적어도 먹는 동안만은, 그 분이 조용히 먹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약속을 시켰다. 그들은 이 약속을 충실하게 지켰고, 그는 그 부인들이 그렇게 마음을 들여서 돕는 것을 매우 즐기는 것 같았다. 그때에는, 그가 대단한 식욕을 보이면서 먹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놀랐다. 그 여자들은 그에게 겨우 포도주 석 잔을 마시게 했다. 그 포도주에는 절반쯤 설탕이 들어 있었다. 그는 설탕을 아주 좋아 하였다. 디저트가 나온 때에, 이야기는 활기를 띄고, 나중에 홍차와 커피를 드는 동안에도 이어져 내가 마차를 타도록 한 일곱 시까지 끊이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질문을 그 부인들은 그에게 했지만, 그는 하나하나 모두 대답을 하였다. 만약에 내가, 그 물음과 대답을 모두 쓰려고 한다면, 매우 많은 것을 써야 하지만, 그러나 한가지만은 써야 하겠다. 이따금 이야기는 몇 년 전에 헤-그에서 세상을 뜬 한 이름 있는 사람이 한 대사에게로 옮겨갔다.

 

 

「나는 그 분이라면 알고 있습니다.」고 스베덴보리 씨는 외쳤다.「그렇지만 나는 그 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들이 지금 그 분 이야기를 하기에, 지금 나는 그 분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부인을 남겨 둔 것을 아는 압니다. 그러나 지금 그분은 영계에서 혼인하여 영원한 아내를 얻었습니다. 그분은,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분보다 더 그의 마음바탕에 화합하는 분입니다.」이 기묘한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물음이 나왔을까 하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으리라. 그는 그 모든 것에 대답하였다. 부인들은 그가 준 대답에 얌전히 만족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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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는 암스테르담을 떠날 차비를 하면서, 파리에 가서 거기에서 런던에 들려서, 스웨덴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1769년[81세] 4월 24일까지 암스테르담에 머물렀다. 그가 파리에 가려고 한 것은, 그 대작(大作)「참(순정)기독교」를 거기에서 낼 준비 때문이었다. 그가 오란다 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이미 그 일을 시작하여, 일 년 뒤에 다 끝냈다.

 

크노-는 그 친구와 헤어질 때의 일을 적었는데,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가 내 집에서 나를 떠나갈 때의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참으로 귀한 이 늙은이는, 이 마지막 때에는 지금껏 보다 더 표정이 넘치고, 또 그 때까지 들은 것보다 매우 달라진 것을 말한 것처럼 나는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착하고 어진 마음씨를 늘 가지고,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우러러 보면서 살아가도록 권하였다.

 

「만일에 하나님의 뜻이라면」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한 번 더 암스테르담에 있는 당신 곁으로 올수 있을 것입니다. 내겐 당신이 사랑스럽습니다.」

 

 

「오, 존귀하신 스베덴보리님,」하고 나는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아마도 그런 일이란, 이 세상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적어도 오래 살기는 바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알 수 없지요」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를 따른다면, 이 세상에 머물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번 주님과 맺어진 사람은, 여기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미리 압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이미 한때의 생명에 대하여 그리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믿어 주세요. 만약에 하나님께서 내일 나를 그 곁으로 부르신다는 것을 안다면 오늘, 나는 음악가들을 불러서 한 번 더 이 세상에서 즐거운 생각을 하고서 이 세상을 즐겁게 떠나렵니다.」누구든지, 이 늙은 신사가 그의 어렸을 때로 다시 돌아가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면, 반드시 내가 그때에 느꼈던 것처럼 느꼈으리라. 그때 그 눈길은, 내가 지금껏 보아온 어느 경우보다 더 순진하고 또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말을 막지도 않고 다만 멍하니 벙어리처럼 잠자코 있었다.

 

 

그때 그는 성서 한권이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입을 다물고 고요히 앞에 있는 분만 보고 있을 때, 그 책을 들어 요한 1서 5장 20절과 21절을 폈다. 그리고서 그는 「이 말씀을 읽어 주세요.」하더니, 그 책을 접고「그보다는 그것을 당신이 잊지 않게 내가 그것을 옮겨 베끼죠.」그는 그렇게 말하고, 펜에 잉크를 묻혀서, 그 말씀을 여기에 지금도 간직되어 있는 종이에 쓰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손은 「나」라는 글자부터, 눈에 띌 만치 떨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근한 태도로 제발 그 말씀을 내게 되풀이 하여 주세요, 하고 청하였다. 되풀이 되어서 나는 스스로 그것을 썼다. 쓰기를 다하자, 그는 곧 일어나서 말했다. 「내가 다른 친구 분들에게도, 헤어져야 할 것을 말해야 할 때가 드디어 이르렀습니다.」그는 나의 목덜미에기대어서, 정성을 다하여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가 내 곁을 떠나자 곧, 나는 그가 내게 그처럼 권한 데를 읽었다. 그 말씀은 이러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그 참되신 분을 아는 이해력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는 그 참되신 분,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우상을 멀리 하시오, 아멘」』(새번역 신약성서 요한 1서 5장 20,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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