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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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용 - 진리의 원수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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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龍) - 진리의 원수

 

 

스베덴보리가 영의 사명에 종사한 맨 처음 10년 동안은, 거리 밖에 있는 조용한 집에서, 세상의 시끄러움을 떠나서 보냈다. 그 다음 2년 동안, 그는 아주 유별난 소견과 주장에 앞장선 이로써 또 아니 여길 수 없는 심령이 능력자로서, 일반 사람들이 바라보는 표적이 되었다. 그 평생의 마지막 10년 동안은, 사나운 바람, 공격, 신랄한 탄핵의 해이었는데, 그 처음 갈겨댐은 독일 학계에서 일어났다.

 

 

스베덴보리가 지은 책은, 그 같은 시대 사람에게서, 거의 또는 전혀 주의를 받지 못한 것으로 종종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그는 여러 번 정기간행물에서 논평을 받았으며, 그것은 그가 지은 과학과 철학의 책만 아니라, 신학에 관한 데까지이다. 그러나 나중 쪽의 평은 업신여김이었다. 이런 좋아할 수 없는 영의 『소식』이 많이 담긴 책이 그런 것 말고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스베덴보리는 그 책을 펴는 것을 틀림없게 하려고, 책가게에 그것을 널어 보이며(전시)팔면서도, 주요한 사람들과 도서관에, 또 친척과 친구에게, 몇 부를 드렸다. 「비밀」은 라이프치히의 「새 정보(New Zetungen)」안에, 또 겟징겐의 「학계정보」에 불리하지 않은 주의를 끌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 이름 숨김(익명) 때문에, 스베덴보리가 런던에서 다섯 권의 논문을 발표한 후, 1760년[72세]까지는 일반에게 주목을 끌지 at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다섯 권의 논문이 런던에서 나오자마자, 그 책은 날카로운 비난을 받았다. 그 처음의 그리고 아주 중요한 공격은, 이름난 학자, 요한 아우구스트 에르네스터 박사가 1760년[72세]과 1769년[81세] 사이에 엮은 「새 신학 총서」제 1권 안에 실린, 그가 손수 쓴 것이었다. 에르네스티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처음엔 「웅변학」, 나중엔 신학 교수였다. 그는 엄청난 지식을 쌓아올린 사람이며, 당치 않게도 『독일사람 키케로*』라고 불렸는데, 이 이름은 심한 공부 힘씀(면학)과 이상한 기억력에는 맞았으나, 영리함에는 맞지 않았으며, 더구나 웅변에는 아니었다. 그는 특히 웅변에는 모자랐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진한 파랑 눈을 한 루터 파의 이른바 정통파 신학사상의 을러 억누르는 듯(위압적)한 지도자는, 비웃는 버릇이 있는 보수주의자요, 지칠 줄 모르는 이단 사냥꾼이기도 했다. 그는 성서는 여기에다 신비롭고 또 비유로 하는 해석을 더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깃발 밑에, 너른 마음(도량)이 좁은 섹트주의(분파주의)의 키잡이가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원리를 받드는 이에게는, 스베덴보리가 저승의 일을 적고, 사람의 이성을 믿음에 덮어놓고 따르는 데서 풀어 놓아주는 가르침**(교의)은, 황소 앞에 자랑삼아 보이는 붉은 천을 닮아 있었다.

 

* 키케로(BC 106-43). 로마의 정치가, 웅변가, 저술가

 

** 이른바 정통파 신학의 가르침은 「사람의 이성은, 믿음이 가르치는 대로 덮어 높고 따라야 한다. 이성은 믿음의 종이다」고 하는 것을 원리로 삼지만, 스베덴보리는 「믿음의 비밀에는 이성이 들어서는 것이 지금은 허락되었으며, 이성으로 곧이들어지지 않는 믿음의 비밀은 물리쳐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에르네스티가 쓴 『신학 총서』책가위에는, 성서의 글자 뜻 말고는 어떤 것도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가, 한 일에만 열중하는 몸 바침의 정표로, 한 끼움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무서운 얼굴을 한 곰 한 마리가, 긴 겨울잠 동안에 제 발바닥을 핥고 있던 굴에서,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또 거기에는 I pse alimente sibi [자기를 기르는 이는 자기 자신이다]는 것도 새겨져 있다. 그의 서 있는 자리를 나타내는 데는,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곰은, 말씀의 속뜻에서 떨어진 그 글자 뜻을 뜻하고, 다만 말씀을 읽기만하고 거기에서 가르침을 하나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먼데서 보면 곰처럼 보인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는, 그가 풀고 있는 말씀의 속뜻을 열어 보이는 것을 치는 잡지 책가위에 새겨진 곰을 보았다면, 아마 웃음을 참지 못하였을 것이다.

 

 

에르네스티는 런던에서 출간된 다섯 권의 논문을 보았으며, 스스로도 그 책에서 자주 말 타고 있는 「비밀」한 부를 손에 넣었다. 그것은 그가 『누구나 제 돈을 「하늘나라의 비밀」에 30 다레루 - 90 마르크 - 를 던져 버리고 싶을 만치,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넉넉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책에 담겨 있는 것을 읽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알리는 일』이 제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르네스티 자신은 『믿음의 비밀 같은 것은,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처럼 두지 않는 것』이다. 「비밀」은 그에게 은 삼십의 값도 없었지만, 에르네스티는 그 책의 목적이 믿음의 「비밀」을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것을 해석하기 위해서라는 주요한 점까지도 놓치고 있다.

 

 

에르네스티는 스베덴보리가 쓴 「비밀」중에서 질서 있는 체계를 보지를 못하고, 성서에 있는 쉬운 글자 속에서는 찾아낼 수 없는 『안에 있는 것』을 모든 곳에서 캐어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떨고(전율)있다. 그는 스베덴보리의 해설에 관하여 간결하게 오히려 바르게 설명은 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뒤에 사람이 다시 사는데 관하여 적게 될 때에는 『그가(스베덴보리) 여기에 말하고 있는 것은, 모두 그가 정신을 잃은 형편 가운데서 안 것이다. 그 이야기는 혼란하고, 희미하고, 분명하지 못하여, 그가 그것을 쓰고 있을 때에는, 그 의식을 완전하게 되찾지 못하였음이 뚜렷하다』고 말하고 있다.

 

 

에르네스티는 「비밀」을 이렇게 가다듬고 나자, 「하늘나라와 지옥」, 그 밖에 다른 책에는 아무런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삼년이 지나서, 그는 여전히 같은 정신으로 스베덴보리를 탄핵했다. 스베덴보리가 그때에 에르네스티가 한 비평을 보았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에르네스티는, 스베덴보리가 「영계일기」에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다섯 가지 사람을 적었는데(163쪽 참조), 그 맨 처음 갈래인 『믿음 - 진리 - 의 원수』이며, 또 그가 저승에서 땅위에 있는 사람에게서 영의 빛을 개갬(방해)하는 용의 꼴을 한 검은 구름이라고 적고 있는 저『개갬 하는 영』이었던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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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75세]봄, 잡지「스웨덴 알리기(보도)」에는 『그 학문을 많이 쌓은 책과 유별나게 다른 사상으로 이름난 스베덴보리 감사관은, 나이 많음에도 아랑곳없이, 유월 초순에 오란다를 향하여 바닷길로 이곳을 떠났다』고 적혔는데, 그 길 떠난 목적은 가르침(교의)의 으뜸제목에 관하여 더 많은 책을 내기 위함이었다.

 

그는 일 때문에, 여덟 번째로 길을 떠나기에 앞서서 『높은 교양을 지닌 영국의 한 점잖은 분』, 곧 독일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이 친구, 그린 씨라는 분이 찾아왔다. 그린은 스베덴보리가 겪어본,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일로, 그 때에 활발하게 논의되던 케니스 - 벨그에서 지난해의 여름을 보냈다.

 

 

칸트는 에르네스티의 탄핵이나 이상한 일을 말하는 이야기에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스베덴보리가 지닌 능력에 대하여 전해지는 넉넉한 증명이 뒷받침하는 이야기에는 마음이 흐트러져서, 그 하나님을 본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그가 영들과 교섭하고 있다고 내세우는 그 터무니를 물었다. 그 편지는 영국의 한 장사치에 의하여 넘져졌고, 감사관은 점잖게 그 대답을 약속했다. 그러나 회담이 없었기 때문에, 칸트는 그린에게 그가 스웨덴에 가 보려고 하기 때문에, 스베덴보리를 찾아뵙고, 왜 회답이 늦어지는 지를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린은 스웨덴에 있는 하나님을 본 사람에게서, 아주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칸트의 편지 이야기를 하니까, 스베덴보리는, 내가 모든데서 칸트가 보낸 편지에 대답이 될 책을 곧 내려고 하지 않았다면, 벌써 회답을 드렸을 것입니다, 고 대답하였다.

 

 

그 해에 오란다 에서, 스베덴보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출판하였으며, 거기에서 영적 원질의 성질을 논하여, 그것으로 칸트가 낸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물음에, 대답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하소연 하고 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신학의 믿음조목을 똑똑히 하려고, 물리학과 해부학의 그 충분한 지식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는 특히 사람 마음이 세 개로 「분리된 정도」를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말할 수가 없다.

 

스베덴보리는 또 깊고도 먼, 이 책 두 권을 내기에 앞서, 아직 내지 않은 「계시록 풀이」에 들어 있는 으뜸제목을, 으뜸삼아 덧붙여 다룬 「으뜸으로 중요한 네 가지 가르침」으로 알려진, 네 권의 논문을 내 놓았다. 그 논문은 「주님」,「성서」,「목숨(생명)」,「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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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 다음으로 「이음편, 마지막 심판」이 출판되었다. 스베덴보리는 앞서 쓴 「마지막 심판과 바빌론의 멸망」에서는, 주로 바빌론으로 뜻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조금은 모하멧 교도와 다른 교도에 대하여 영계에서 일어나는 마지막 심판을 다루었으나, 「이음편, 마지막 심판」에서는 주로 개혁파에 대한 마지막 심판과 그 밖의 것을 다루고 있다. 이 작은 책을 낸 한 까닭은, 영계에서 마지막 심판 뒤의 이 자연계 형편을 밝히기 위해서다. 그는 영들의 세계에서, 회교도, 아프리카사람, 유대교도, 퀘커파, 모라비아 파, 따위의 갖가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만나서 겪은 많은 일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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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는 암스테르담에서 이 책들을 낸 후에, 영국에 가서 출판한 책 몇 권을 런던 왕립학사원 회원들에게 드렸다.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생각한 것이 「영계일기」6098번에 적혀 있는데, 그에 따르면, 그는 영들의 세계에서 영국의 한 감독을 만났는데, 그는 스베덴보리에게, 당신의 책을 영국에서는 완전히 물리쳐 버림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 감독은, 제가 갖가지 능갈맞은(교활한)방법을 써서 영국의 왕과 영주들과 옥스퍼드의 사제들 사이에서 스베덴보리가 쓴 책을 탄핵하였는데, 그 일이 성공했다고 밝히고 있다.

 

 

스베덴보리는 전에 영국의 교직자와지도하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와 지옥」그 밖에 다른 논문을 드렸는데, 그들에게서 이처럼 물리침을 받은 일이 스베덴보리로 하여금 그 뒤에 지은 책을 암스테르담에서 내게 하였다고 생각을 하게 한다. 다른 까닭은, 옛 인쇄된 죤 류스가 돌아갔다는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저승에서 그를 만나서, 그를 성실치 못한 사람이라고 적고 있다. 그에게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은 가름대를 열십자로 엮어 막혀있다.

 

 

류스의 짝으로 「하늘나라의 비밀」의 판을 실지론 짠 하-트도 죽은지가 얼마 안 되었다. 하-트의 성격은 류스와 아주 달랐다. 그는 스베덴보리가 런던에 있을 때에는, 종종 그와 함께 저녁을 보낸, 혼자서 사귄 친구이기도 하였다. 그는 그때, 열 살쯤 된 하-트의 손녀딸을 사랑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런던에 오면, 포핀스 코-트에 있는 하-트의 집을 찾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인쇄인의 아들을 만나자, 그 아들은 그를 안으로 맞아들이고서, 당신의 옛 친구는 죽었습니다, 고 말했다. 그러자 스베덴보리는 대답을 하였다고 그 아들은 말한다. 『나는 그 일을 아주 잘 알고 있지요. 내가 오란다에 있을 때에, 당신 아버님을 만났으며, 배로 영국에 오는 동안에도 만났습니다. 아버님은 아직 하늘나라에는 계시지 않고, 길을 돌아서 가고 있는데, 착한 분이니까 행복하게 되겠죠.』그 남은 이와 아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스베덴보리가 그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있지도 않는 일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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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는 1764년[76세]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여덟 번째 외국 여행에서 돌아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8월에, 그는 스톡홀름에서, 메닌텔 대감독에게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낸 책은 외국잡지에 논평이 실리고 있었다. 에스네스티가 그 논문이 나오자 곧 공격하는 데로 돌아와서 호된 평을 끼얹은 일은 놀랄 것이 못되어, 또 그 「가르침 네 권」- 주님, 성서, 목숨, 믿음 - 에 대한 탄핵도, 앞서 「하늘나라와 지옥」에 대하여 한 것처럼, 업신여김과 당치도 않은 것이었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에르네스티는 이 책을 평하면서, 또 앞서 평한 데서도, 저는 지은이가 누군지 안다고 말을 하지만, 스베덴보리라고 그 이름을 들지는 않았다.

 

 

에르네스티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하나님이었다. 그는 이 가르침을 지은이가, 일반으로 기독교인을 『세 겹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까닭으로 비웃으며, 『하나님은 인격과 본바탕은 하나이고, 그 하나님은 주 그리스도이다』고 선언한다고 말한다. 에스네스티에게, 이것은 죄물음(속죄)의 근본 가르침을 뿌리째로 뒤엎고 마는, 몹시 한심한 길 다름(이단)이라는 것이 뚜렷하였다. 그 까닭은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인류에게 앙갚음으로 벌주는 하나님은 아주 계시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 이것은 그때뿐 아니라 오늘날의 기독교회가 가르치는바, 근본에 관한 이론다툼이다. 그때에만 아니고, 지금 있는 기독교회는, 제 4세기에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만든 믿음조목을 바탕으로, 세 하나님 한 하나님(삼신 일신설. 三神 一神設), 세 인격 한 인격설(삼인격 일인격설. 三人格一人格設), 을 골라 뽑아서 썼다. 곧 세상을 만들기 전인 그 처음에,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또는 아버지인 한 인격, 아들인 한 인격, 성령인 한 인격이 계셨는데, 그것들은 세 하나님 또는 세 인격은 아니고, 한 하나님이요, 한 인격이라」는 도저히 이성으로는 받아들여 인정할 수 없는, 세분이 한 몸(삼위일체 三位) 이라는 이론을 뽑아서 쓰며, 다시 「아들 하나님이, 땅에 내려와서 사람의 성품을 가지고,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인류의 죄악에 하나님이 앙갚음 하러 내리는 형벌을 인류를 대신해서 받아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었다」는, 형벌 대신 값 설(형벌 대상설 刑罰代償設) 이라는 것을 골라 뽑아서 썼다. 그런고로 스베덴보리가 하는 말은, 이른바 정통이라고 하는 하나님과 구원론을 송두리 째로 뒤엎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에르네스티에게, 믿음과 사랑이 합쳐진 일만이 사람을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수단이라고, 스베덴보리가 풀이하는 「목숨」의 가르침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기독교가 말하는 복된 소식의 본바탕은, 「인류의 죄에 내리는 하나님의 노여움인 형벌을, 몸소 십자가에 달려서 없앤 그리스도의 공로로, 단순하게 믿는 데에 사람의 구원이 있고, 이것 말고 다른 모든 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라는, 선자리를 굳히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이른바 「믿음을 옭게 여김(신앙 의인론 信仰義認論)」곧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것만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하는 그때와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기독교회의 이치와 스베덴보리가 가르치는 것과는, 물과 기름보다도 더한 의견맞춤(타협)도 허락되지 않는,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이 평을 쓴 사람은, 스베덴보리가 지금 프랑스 왕의 증조할아버지인 루이 14세를 영계에서 만난 일을 적은 이야기에, 특별히 눈여겨보라고 조르고 있다. 루이 14세가 세상에 있는 동안, 참으로 경건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영계에서 , 프랑스 국민의 가장 좋은 사회를 다스리고 있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하고 있다.

 

 

다른 프랑스말로 된 잡지는, 그 같은 으뜸제목을 다루어, 『이러한 책을, 또는 그 많은 뜬생각(공상)을 세상에 내는 원인은 알 수 없다』고 적었다.

 

 

런던에서는, 「다달이 하는 비평(Monthly Review」은, 그새 책을 비웃었다. 『읽는 이는, 연극이 임금님의 명령, 또는 상류계급 몇 분이 특별히 원해서 상연되었다는 일은 들은 적이 있겠지만, 그러나 책이 「주님의 뚜렷한 명령」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일은 들은 적이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이 비평은 다음과 같은 짐작으로 끝을 맺는다. 『이를테면 미들섹스 - 런던 북쪽과 서쪽에 닿은 주 - 배심원들이 이 책의 내용을 조사한다고 하면, 「천재와 미치광이는 종이 한 장의 차이 이기」 때문에, 의심할 것 없이 그들은, 입은 저마다 다르지만, 한 소리로, 미친 데서 나온 것이라고, 판결을 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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