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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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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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

 

 

 

스베덴보리는 1744년 [56세]10월 7일에, 「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 」이라고 이름 붙인 책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 된다. 그는 이미 「감각」을 다룬 책 일부를 인쇄에 넣었지만 그 책은 내버렸다. 이 새 책의 초벌원고는 놀라울 만치 짧은 동안에 완성했다.

왜냐하면, 가을 경치를 서글프게 비쳐내는 머리말을 썼을 때, 제 1부는 아마 인쇄를 끝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삶의 봄은 지나가 버렸다. 런던에서 스베덴보리는 철학에 대하여 쓴 마지막 책인, 어떤 뜻에서는 그가 가장 힘을 기울인 이 책이 끝났기 때문에, 어쩌면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은 서글픈 생각에 휩싸여, 슬픔과, 마음이 흩어져서 외로움에 지쳐 있었다, 힘을 쏟았다. 무엇을 위하여!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높이 끌어 올려서, 하나님에게 생각을 달려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그처럼 심하고 세찬 연구를 하면서 배운 것들을 곧 모든 목적의 목적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임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학문세계에서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생각에, 기가 죽었다. 「동물계」의 평은 이제야 나왔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얼마나 그를 알지 못하는가를 알아 차렸다.

 

 

그는 언제나 그리하였듯이 어떤 영국의 공원을 걷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올봄에 처음으로 그곳을 걷고 나서 늘 즐거움을 준 곳이었지만, 지금, 그는 제 나라와, 제 나라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외로움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슬픔도 얼마 안가서 깊은 근심으로 옮겨갔다.

 

 

『겉잡지 못할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어떤 때 혼자 걸으면서 나무들이 잎을 비처럼 흩날리고, 여름에 걸쳤던 그 꾸밈을 언저리에 뿌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슬픔을 잊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고 말았다......, 나는 변해가는 시간에 생각이 잠기기 시작하였다. 문득 나는 시간에 걸려 있는 모든 것은, 모두 한결같이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숲뿐이 아니고 우리들의 목숨도, 시대도, 함께 변해가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였다. 우리들의 목숨도, 시대도 이와 같이 한 봄으로 시작해서 꽃을 피우고 여름을 지나서 곧 가을의 모습을 비치는 늙은 나이에 빠져든다. 그것은 사람 제각기의 목숨이 사는 동안만이 아니고, 세계가 존재하는 시대와 또 이온에게도 말할 수가 있다…….』(「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머리말).

*「이온」. 지질시대의 가장 큰 구분).

 

 

만일에, 일평생에 걸쳐서 발달해가는 정신과정을 요약할 수 있다면, 어린 아이 시대의 꿈, 어버이의 정성스런 가르침, 청년시대의 연구, 어른이 된 처음 시기의 시정(詩情)을 함께 모을 수 있다면, 한 어른이 품은 사회개량을 위한 환상, 천체의 얼개에 대하여 품은 생각을 섞어서, 거기에 심령의 환상에서 생기는 활동을 연결시켜, 그 모든 것을 한권의 책으로 할 수 있다면, 그 책은 바로 「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스베덴보리가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탐구한 것을 요약해서 넣고, 그것을 그 마음의 가장 높은 지배자의 발밑에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온 생애가 하나의 준비인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고, 그는 어떤 꿈을 풀어서 적고 있다. 그 준비는 이제 거의 다 되어 있었다. 그 모든 감정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로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그래서 생긴 이 뛰어난 산문시는 천지창조를, 반은 과학적으로, 반은 시정을 다해서 강해한 것이다. 그것은 그것에 앞서 내 놓은 「동물계」와도 관련이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완성한 것이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그 「동물계」를 설명하면서, 자기는 모든 창조된 것의 맨 꼭대기로서 보게 될 하나님의 수도(도성)를 맨 나중에 다룰 것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DeCultu et Amore Dei」「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은, 말하자면 사람보다도 천사들을 위하여 쓴 책이다. 그것은 마치 지은이가 감각에 뿌리를 둔 이론만을 믿고, 영적인 것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 이론만을 논하는 자들과 논쟁하는데 는 흥미를 잃어버리고 감각을 넘어선 것의 존재를 자기 속에서 완전히 다 알고, 저 세상에만 있는 그런 지성을 가진 이들과 사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은 책이다.

 

 

이 책의 내용에는 이보다 더 들어 갈수 없는 것이 유감스럽다.

 

 

그는 이 책의 제 1부와 제 2부를 1745년 [57세]3월 중순쯤에 출판하고, 제 3부를 인쇄하는데 관계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다 되기 전에, 한 영적 경험 때문에 그 생애는 새로운 쪽을 더듬어, 1745년 [57세]4월 반쯤해서 그 책은 그만두게 되었다.

 

우리들이 이 새 시대를 짓는 금을 긋는 사건을 스베덴보리에게서 바로 듣지 못하고, 한 친구가, 그가 말한 것을 그대로 써 둔데서 알게 된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그 원고의 두 곳에서 그 같은 사건을 밝히 말하고는 있으나 그 어디에도 그 일의 성질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여

관에서 좀 늦게 점심을 먹었다. 그는 그 여관에서 밥을 먹는 일이 버릇이 되었고 또 거기에 자기 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배가 고파서 왕성한 식욕을 느끼면서 먹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그 생각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하늘나라의 것이 차지하고 있었다.

 

 

먹기를 마칠쯤에, 그는 눈앞에 뭔가 어렴풋이 흐리어 가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 때에 잠자리에 뱀이든가 개구리든가 하는 기분이 나쁜 살아있는 것들이 가득차서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스베덴보리는 말했다. 『나는 간이 떨어졌습니다. 내 감각은 온전하였으며, 생각과 판단도 분명하고 똑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내 둘레가 아주 캄캄해졌습니다. 그러자 뜻밖에 어둠은 사라지고 한 사람이 방 모퉁이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때에 나 혼자뿐이었으므로, 그 사람의 말씀에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 먹으면 안 됩니다!」고 말하였습니다.

 

 

다시금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러나 곧 밝아졌으며, 나는 혼자서 그 방에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생각해 본 일도 없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여관 주인에게는 아무런 불안한 느낌을 보이지 않았지만, 방금 일어난 일을 충분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우연한 일이라고는, 또는 무슨 물리적 원인에서 생긴 것으로는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방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분이 또 내게 나타났습니다. 그 때엔 나는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나는 주 하나님, 세계의 창조자, 속량주요, 사람들에게 성서의 영적인 뜻을 밝히 보여주려고 나를 뽑았으며, 내가 네게 그 주제에 관해서 쓸 것을 밝히 보여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 같은 날 밤에, 영들의 세계, 하늘나라와 지옥이 조금도 가리움 없이 똑똑하게 내게 열렸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이 세상에서 살았던 여러 경우에 있던 아는 사람을 알아 차렸습니다. 그 날로부터 나는 세상 학문에 종사하는 일을 아주 그만두고, 영적인 일에 골몰 하였습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친한 동무요, 스톡홀름 은행 지배인이요, 과학 학사원의 같은 한사람인 카르르 로뜨삼이 적은 것인데, 그는 다른 세상과의 교류에 관해서 물어 보았다. 이것을 스웨덴에서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가브리엘 안델슨 베이엘 박사가 적은 편지에서 말하는 사건과 비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께서 이 감사관 앞에 몸소 나타나셔서, 감사관은, 주께서 당당한 자줏빛 못을 입으시고, 장엄한 빛 가운데서 감사관 침대 가까이 앉으셔서, 그가 맡은 일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는 정보는, 내가 로센 박사의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감사관이 제 입으로 친히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 늙은 신사를 만나 뵈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얼마동안 이어졌는가, 그분에게 물어 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분은 「대강 15분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그 센 빛 때문에, 당신 눈에 무슨 영향이 없습니까, 하는 물음에는,「아니요, 아무것도」라고 말했습니다.』(닷휄박사엮음「문서」둘째 권 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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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 평생의 처음 단계는 이젠 끝났다. 1745년 [57세]4월의 놀라운 환상에 의하여 그 생명의 뜻은 그에게 설명 되었으며, 그 슬픔과 서러움은 기쁨으로, 그 불안은 위로에 찬 굳은 믿음으로 바뀌었다. 할 일을 주님에게서 받았다. 주님에게 부름 받은 15분 동안에, 그가 어떤 특별명령을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는 그 후에 곧바로 성서를 철저히 연구하기를 시작했으며, 앞으로 3년 동안은, 그 일에만 달라붙었다는 것 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 뒤에 적힌 그의 원고 사이에는『세상에 반드시 오실 메시아』를 말하는 성서에 적힌 것을 모은 것이 발견 되었는데, 그 뒤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들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김없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고자 하시는 메시아(구원의주)이시다......, 바야흐로 때는 다가왔다. 주님은 꼭 오신다.』(A. 악톤 옮김「틀림없이 오실 메시아」1749년 발간,18쪽)

*이 사건은 어쩌면 데루흐트에서 있었던 환상을 말하는 것일거라:쉬그스텟드 여사는 토를 단다. 이 책의 121쪽과 책 끝의「스베덴보리 평생의 주요사항」297쪽을 보라.

 

6월 2일, 스베덴보리는 런던에 있는 스웨덴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였고, 1745년 6월 25일 「세례요한의 날」에도 예배에 함께 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그가 꿈속에서 교회에 나아가고, 성찬을 받는 것에서 멀어지지 말라는 강한 권고를 받은 일을 적어도 좋으리라.

 

7월에 그는 런던을

떠나서, 그 다섯 번째 외국여행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8월 19일 광산국 출근부에는 그의 이름이 다시 보인다. 두서너 달을 그는, 창문에서 스릇센과 스겟프스 부론의 다리를 바라볼 수 있는 아파트에서 다시 살았지만, 1746년 [58세]봄에는 그 냇가 건너 남쪽 지구에 있는 호른스가탄에 있는 자기 집으로 옮겼다.

 

 

그것은 그가 아파트에 머무는 동안에 고쳐둔 것이다. 여기에서 스베덴보리는 앞으로 스무 해 동안을 살면서, 그가 지은 신학에 관한 책의 대부분을 집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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