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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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용서에 관해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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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용서에 관해여

 

사람이 저지른 죄들은 그의 생명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리고 그의 생명을 이루어 간다. 그러므로 만약에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영접, 수용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죄들로부터 자유하지 못한다. 그와 같은 자유와 해방은, 중생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어느 누구나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 자기 스스로는 선한 것을 행할 수 없고, 또한 참된 것을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은 요한복음서에서 잘 알 수 있다. 요한복음서의 말씀이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요한 3:27)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사람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이렇게 볼 때 어느 누구도 온갖 죄들로부터 물러날 수 없다. 따라서 주님께서 그것들을 용서하셔야 하고, 그리고 주님께서 홀로 구원하신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다.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사랑에 속한 선과 믿음에 속한 진리를 가지고 사람에게 입류하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주 다종다양하게 영접, 수용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또 다른 방법으로 각기 영접, 수용된다. 그리고 중생된 자들은 그것들을 잘 영접, 수용하지만, 그러나 중생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고,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좋지 않게 영접, 수용한다.

 

중생한 사람들은 믿음에 속한 선이나 사랑에 속한 선 안에 계속해서 주님에 의하여 간수되고, 그 때 온갖 악들이나 거짓들로부터 억제되고, 지켜진다. 그리고 중생하기를 선호, 감당하지 않는 자들도 주님께서 악에서 물러나게 하고, 선에 간수된다. 왜냐하면 선과 진리는 계속해서 사람 모두에게 주님으로부터 입류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처해 있는 지옥적인 사랑들(=애욕들)은, 다시 말하면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은 그 길에서 저항하고, 그리고 선의 입류를 악으로, 진리의 입류를 거짓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죄악의 용서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겠다. 주님에 의하여 사랑에 속한 선 안에, 그리고 믿음에 속한 진리들 안에 간수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온갖 악들이나 거짓들에게서 물러나게 한다는 것이 온갖 죄악들의 용서다. 악이나 거짓에서 멀리 기피하고, 그리고 그것들에 대하여 증오나 미움을 실감하는 것이 회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회개의 과정을 거치고,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영접, 수용한 자들에게만 가능하다.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새로운 생명(=삶)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죄악들이 용서되었다는 증표들은 뒤에 이어진다. 하나님을 목적한 하나님 예배에서 기쁨을 느끼고, 그리고 이웃을 위한 이웃의 섬김에서 기쁨을 느끼고, 따라서 선을 목적한 선한 것의 실천이나 진리를 목적한 진리를 믿는 것에서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낀다. 여기에는 인애나 믿음에 속한 그 어떤 것에 의한 반대급부적인 보상에 대한 그 어떤 바람도 없다. 온갖 악들, 예컨대 증오. 복수심. 무자비함. 불의 따위들, 한마디로 하나님에 대하여 대항하고 저항하는, 그리고 이웃에게 거스르는 모든 것들은 멀리 기피하고, 증오 안에 둔다.

 

그러나 온갖 죄악이 용서받지 못하였다는 증표들은 아래와 같다. 하나님을 목적해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웃을 목적해서 이웃을 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이 선을 위해서 행해지지 않고 진리가 진리를 위해서 언급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이나 세상을 위해서 그런 일을 행하고, 언급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한 공덕을 얻으려는 열망만 있다. 자기 자신과 비교하여 다른 자들은 경멸될 뿐입이다. 온갖 악들 가운데서 쾌락을 만끽하는데, 예를 들면 그런 것들은 온갖 증오들. 미움. 복수. 잔인. 음란 등이 되겠다. 교회에 속한 거룩한 것들은 경멸의 상태에 놓이고, 부정하는 마음에 있다.

 

온갖 죄악들이 용서될 때에 그들은 죄악이 씻어지기를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물로 더러운 것이 씻어지듯이 씻어진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죄악들은 그 사람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모두 씻어졌다.”고 하는 그들의 말은, 그 사람이 그것들에게서 물러나 있을 때 그런 겉모습(外現)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신령자비로 사람을 중생시키신다. 이러한 일은 이 세상에서 어려서부터 그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행해지고, 그리고 그 뒤 영원히 이어진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사람을 온갖 악들이나 거짓들로부터 물러나게 하시고, 그리고 그를 믿음에 속한 진리들이나 사랑에 속한 진리들이나 사랑에 속한 선들에게로 인도하시고, 그 뒤에는 이런 상태에서 그를 간수하신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는, 신령자비로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천계에 있는 주님 자신에게로 올리시고, 그리고 그를 행복하게 하신다. 이런 모든 것이 자비로 인한 온갖 죄악의 용서가 뜻하는 내용이다.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죄악들이 용서받는다고 믿는 자들은 아주 큰 과오들을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그것이 다른 방법으로 행해진다면, 지옥에서 사람들의 무리를 본다는 것은 자비의 결여일 것이고, 또한 그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자비 자체이시고, 그리고 어느 누구의 멸망도 원하시지 않고, 다만 그가 죽지 않고 살기를 원하신다.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중생하기를 선호하지 않는 자들은, 따라서 온갖 악들이나 거짓들에게서 자기 스스로 물러나기를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이와 같은 주님의 자비들을 제거하고, 내동댕이친다. 그러므로 그가 바로, 자기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과오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이 요한복음서에서 뜻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서의 말씀이다.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요한 1:12,13)

 

여기서 “혈통으로” 라는 말은 믿음에 속한 선들이나 인애에 속한 선들에 정반대가 되는 자들을 뜻하고, 그리고 “육정으로”라는 말은,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에서 비롯된 온갖 악들 가운데 있는 자들을 뜻하고, “사람의 욕망으로”라는 말은 그것에서 파생된 온갖 거짓들 안에 있는 자들을 뜻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말은 중생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에 중생되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라도 천계에 들어갈 자가 없다는 것을 요한복음서에서 이와 같이 가르친다.

요한복음서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였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영)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3,5)

여기서 “물로 난다”는 말은 믿음에 속한 진리를 통한다는 것을 뜻하고, “영으로 난다” 는 말은 사랑에 속한 선을 통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모든 것에서 볼 때 그의 온갖 죄악들이 용서되었다는 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겠고, 그리고 온갖 죄악을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겠다 (9443-9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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