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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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과정에 있는 자들은 온갖 시험들을 겪는다.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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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과정에 있는 자들은 온갖 시험들을 겪는다.

 

중생과정에 있는 자들은 온갖 시험들을 겪는다.

시험들은 곧 사람 안에 있는 영적인 싸움(=다툼)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지옥에서 비롯된 악과 그리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에게서 비롯된 선 사이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시험은 그의 악들이나 거짓들 안에 사는 악령들에 의하여 유발한다. 이런 영들은 그의 온갖 악들을 꼬드기고, 그 사람에게 죄를 씌운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비롯된 그의 선들이나 진리들 안에 사는 천사들은 그 사람에게 있는 믿음에 속한 진리들을 불러일으키고, 그 사람을 보호한다.

 

온갖 시험들과 관계된 것은 그 사람에게 있는 지옥에서 비롯된 악에 속한 통치에 관계하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있는 주님에게서 비롯된 선에 속한 통치에 관계된다. 통치권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악은 자연적인 사람, 즉 겉사람 안에 존재하지만, 그러나 선은 영적인 사람, 즉 속사람 안에 있다. 그러므로 시험들 안에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전자가 후자를 지배하려는 통치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악이 정복하면, 자연적인 사람은 영적인 것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잡지만, 만약에 선이 승리하면 영적인 사람은 자연적인 것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쥐게 된다.

 

이 다툼(=싸움)이 성언에서 비롯된 믿음에 속한 진리들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다. 그 사람은 이런 것들에게서 비롯된 악들이나 거짓들에 대항하여 반드시 싸워야 한다. 만약에 그가 그 밖에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싸운다면 그는 승리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런 것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툼(=싸움)이 성언에게서 비롯된 믿음에 속한 진리들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가 진리에 속한 지식들이나 선에 속한 지식들 안에 있기 전에는 그 싸움에 허입(許入)되지 않고, 그리고 그 사람은 그것들에게서 어떤 영적인 삶을 취할 때까지 그 싸움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싸움들은, 그 사람이 성숙한 연령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사람에게서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에게 그가 싸우기 위하여 성언에게서 비롯되는 믿음에 속한 진리들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따라서 그 사람 안에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영적인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어떤 싸움(=시험)에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그 싸움에서 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에 사람이 그 싸움에서 패하게 되면 그의 시험들의 상태는 시험 전의 그의 상태에 비하여 더욱 나빠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때 악은 선을 지배하는 능력을 자기 자체에게 더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은 진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믿음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왜냐하면 교회가 그것의 종말의 때에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오늘날은 거의 대부분이 영적인 시험을 겪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얻는 것은, 그 시험들이 무엇인지 거의 알지 못하고, 따라서 그것들이 무엇인지 설명한다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온갖 시험들은 믿음에 속한 진리들의 확증에 크게 이바지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인애에 속한 선들이 되기 위하여 그것들의 의지에의 주입에 역시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사람은 믿음에 속한 진리들로 말미암아 온갖 악들이나 거짓들에 대항하여 싸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그 때, 진리들 안에 있고, 그리고 그가 승리하였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그것들 안에서 확증하고, 그것들을 이식(移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하나의 원수(=적군)로 여기고,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그 사람을 살해하는 온갖 악들이나 거짓들을 배척한다. 더욱이 온갖 시험들을 통하여 자기사랑과 세상사랑에 속한 애욕(=사랑.love)들은 정복되고, 따라서 그 사람은 주님에게서 비롯된 천계에 속한 생명을 영접, 수용하기에 적합한 존재가 되는데, 이 생명은 새로운 생명으로, 그것은 중생한 사람에게 속한 그런 생명을 가리킨다.

 

믿음에 속한 진리들은 온갖 시험들을 통하여 확증되기 때문에, 그리고 인애에 속한 선들이 이식되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악에 속한 온갖 욕망들이나 현세적인 욕망들은 정복되기 때문에 그것은 시험들을 통하여 영적인 사람, 즉 속사람은 자연적인 사람, 즉 겉사람을 지배하는 통치력을 터득한다. 따라서 인애나 믿음에 속한 선은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에 속한 악을 지배한다. 이러한 일이 성취되었을 때 그 사람은 조요를 취하고, 그리고 참된 것이나, 선한 것에 관해서 지각하고, 그리고 또한 거짓된 것이나 악한 것에 관해서도 지각한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총명이나 지혜를 취하는데, 그것은 그 뒤 매일매일 증대한다.

 

시험들 안에서 사람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처럼 온갖 악들이나 거짓들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그와 같은 일을 주님으로 말미암아 행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만약에 시험 자체를 겪는 동안 그가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때 그 사람이 불 영명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그는 시험 뒤에야 그것을 믿을 것이다. 만약에 시험 뒤에 그 사람이 주님께서 홀로 그 사람을 위하여 싸우시고, 그 사람은 다만 외적인 시험을 겪은 것인데, 그 시험은 깊이 침투한 것이 아니고, 또한 믿음이나 인애에 속한 것이 결코 뿌리를 박게 한 것은 아니다.(8958-8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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