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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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속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경건의 삶과 인애이 있어야 한다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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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속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경건의 삶과 인애이 있어야 한다

 

교회에 속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경건의 삶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인애의 삶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그것들은 갈라져서는 안 되고, 함께 결합되어야 한다. 인애의 삶이 없는 경건의 삶은 아무것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와 함께 전자는 모든 것들에게 유익하다.

 

경건의 삶은 경건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경건하게 말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기도에 바치는 것이고, 그럴 때에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이고, 자주 예배 자리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리고 예배 자리에 참여해서는 설교말씀을 겸손하게 경청하는 것이고, 매회 성만찬 예전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예배에 속한 다른 많은 것들을 준수하는 것 등등이다. 그러나 인애의 삶은 이웃이 잘되기를 원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웃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고, 그리고 모든 일에서 그리고 우리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정의와 합법적인 것으로 행동하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인애의 삶은 선용을 성취하는 것에 존재한다.

 

진정한 주님예배는 인애의 삶 안에 존재하지만, 그러나 인애의 삶이 결여된 경건이 삶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애의 삶이 결여된 경건의 삶은 오직 자기 자아(=고유속성)를 위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이웃을 위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디다. 그러나 인애의 삶과 함께 하는 경건의 삶은 이웃을 위해서 자기 자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전자의 삶은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지만, 그러나 후자의 삶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선한 것을 행하는 것이,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라는 말은 마태복음서의 주님말씀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마태 7:24,26)

 

더욱이 사람은 자신의 인애의 삶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인애의 삶이 결여된 그의 경건의 삶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인애의 삶은 영원히 그 사람과 함께 남지만, 그러나 후자가 전자에 일치하는 것에 비례하여 경건의 삶은 남는 것이다. 인애의 삶이 영원히 그 사람과 더불어 존속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인 아래의 장절에서 잘 알 수 있겠다.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마태 16:27)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요한 5:29)

 

그리고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언급된 내용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예배하는 주된 수단이 그 삶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성경에 있는 그분의 명령에 일치하는 삶을 뜻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에 의하여 사람은 믿음이 무엇인지 터득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또한 인애가 무엇인지를 터득하기 때문이다. 이 삶이 바로 기독교인의 삶이고, 그리고 그것은 영적인 삶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 삶은 없지만 의로운 것이나 고귀한 것에 속한 율법에 일치하는 삶은 다만 시민법적인 삶이고, 그리고 도덕적인 삶일 뿐이다. 이런 삶은 이 세상의 한 시민이 되게 하지만, 그러나 성경에 있는 그분의 명령에

일치한 영적인 삶은 천계의 한 시민이 되게 한다.(8252-8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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