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하나님의 집은 곧 주님을 뜻하고,거룩한 선에 속한 진리들이나, 진리속한 선들을 뜻한다.

  • 관리자 (ecclesias)
  • 2018-01-01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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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집은 곧 주님을 뜻하고,거룩한 선에 속한 진리들이나, 진리속한 선들을 뜻한다.

 

그 이유는 중생과정에 있는 사람에게서 더욱이 그 사람이 중생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있는 진리들은 선에 속한 것이고, 선들은 진리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리들은 이해에 속한 생명을 이루고, 그리고 선은 의지에 속한 생명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생한 사람에게서 이해와 의는 한 마음을 만들고, 그것들은 상호적으로 이해에 속한 진리들은 의지에 속한 선과 교류하고, 그리고 의지에 속한 선은 이해에 속한 진리들과 교류한다.

 

이것들은 피가 심장에서부터, 폐장에 유입하는 것과 같고, 그리고 그것에서 다시 심장에 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면 거의 서로 간의 유입은 불가능하다. 그 때 심장의 왼쪽 심실에서 동맥에 유입하고, 동맥에서게서 정맥을 통하여 다시 심장에 되돌아 유입한다.  사람의 이해에서 그의 의지로 그리고 그의 의지에서 그의 이해로, 사람 안에 있는 상호적인 작용 관한 어떤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예를 들었다. 이해나 의지 안에 있는 믿음에 속한 진리와 인애에 속한 선의 상호적인 활동에 관한 하나의 개념이 폐장과 심장에서 비롯된 특별한 작용에서 얻는 다는 것은 폐장은 믿음에 속한 진리에 대응하고, 심장은 사랑에 속한 선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얻은 결론은 성경에서 “심장”은 의지에 속한 생명을 뜻하고, 그리고 “영혼”은 믿음에 속한 생명을 뜻한다고 하겠다.

 

이런 것들로부터 이해에 속한 진리에 관해서 하나의 개념과 의지에 속한 관한 하나의 개념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은 믿음이나 사랑에 속한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그런 것들로부터 하나의 개념을 그것들에게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자기 자신안에서 알고 있고, 그리고 느끼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 하나의 개념이 없다면, 사람은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가 대응으로부터, 그것들에 관해서 생각 할 때, 믿음이나 사랑에 속한 것들에 관해서, 올바르게 생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응들은 자연적인 진리들이고, 그것 안에는 마치 거울에서와 같이, 영적인 진리들이 들오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에 관한 생각의 개념들이 대응에 관하여 별개로 형성되어 있는 한, 그것들은 감관에 속한 온갖 오류들로부터, 그리고 또한 그런 것들과의 일치하지 않고, 상반되게 그것들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믿음에 속한 것이나, 사랑에 속한 것에 관해서 가지고 있는 개념들의 종류는 저 세상에서 아주 명백하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개념들은 명료하게 지각되기 때문이다.

 

믿음에 속한 진리들이 사람의 이해와 관계한다는 진술이나 설명 따위는, 그리고 인애에 속한 선은 사람의 의지와 관계한다는 그런 것들은 단순하게 믿고 있는 믿음에 속한 것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스스로 말하고, 확증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순 같이 보일 것이다.

그 이유는 자연적인 사람이나, 그의 이해는 이런 종류의 그 어떤 것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파악하지도 못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또한 믿음이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사람들은,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사람은 지리 안에서 빛을 보고, 그리고 선으로 불이 붙는다고 시인하고 믿는다. 그리고 또한 그가 빛을 받은 상태(조요의 상태)에 있을 때, 참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참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지각한다고 믿고 시인한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에서 밝혀진 진리들에서 다른 자들에 비하여 탁월하게 빛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것은 빛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것은 빛을 받은 자들이 하나의 사물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자신들 안에서 직시하고, 지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때 내적인 빛을 받은 것이 그들의 이해라는 것, 그리고 내적으로 불이 지펴진 것이 그들의 의지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그들이 빛을 받은 것 안에 있는 믿음에 속한 본연의 진리라면, 그리고 만약에 그것이 그들이 불 지펴진 인애에 속한 본연의 선이라면, 그 때 그것은 조요된 상태의 속사람의 이해이고, 불 지펴진 속사람은 의지이다. 믿음에 속한 본연의 선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경우는 전적으로 다르다.

 

진리 안에 있고, 본연의 선 안에 있지 않는 자들, 심지어 거짓들이나 악들 안에 있는 자들도, 사실 교회에 속한 진리들을 확증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들이 진리인지의 여부를 안에서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들이 태어난 교회에 속한 교리적인 것들 안에 머물러 있고, 또한 그저 단순하게 이것들을 확증하고, 굳힌다고 하겠다.그리고 만약에 그런 부류의 조상으로 태어났다면, 그들은 아마도 가장 큰 이단사설까지도 스스로 확증할 것이다.

이런 모든 것에서 볼 때, 진리의 애정 안에 있지만, 악에서 비롯된 진리의 애정 안에 있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해는 빛을 받는 조요의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에서 비롯된 진리의 애정 안에 있는 자들의 속사람의 이해는 빛을 받고, 속사람의 의지는 불을 지피지만, 그러나 악에서 비롯된 진리의 애정 안에 있는 자들에게서 속사람의 이해는 조요의 상태에 있지 않고, 또한 속사람 또한 불을 지피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자연적인 사람이고, 따라서 자연적인 사람은 믿음에 속한 것들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선에서 비롯된 진리의 애정 안에 있는 사람에게서, 결과적을 내면적인 사람들이고,영적인 사람에게서, 믿음에 속한 진리들 안에서 빛을 받는 것은 바로 이해이고, 그리고 인애에 속한 선을 지피는 것이 의지라는 것은 저 세상에 있는 동일한 인물들에게서 자주 잘 드러난다. 거기에서 그들은 믿음에 속한 모든 이해 안에 있고, 그리고 인애에 속한 모든 것들의 의지 안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명료하게 지각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총명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육신을 벗은 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조요된 내면적인 이해 안에 있기 때문이고, 거기에서는 지피워진 내면적인 의지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 때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빛을 받고, 불을 지피는지 지각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때 그들은 육신을 입은 상태에서 생각 하였고, 그리고 이 세상에 속한 것들로부터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명확한 사실은 믿음에 속한 진리들이 이해의 생명을 이루고, 인애에 속한 선이 의지의 생명을 이룬다고 하겠다. 결과적을 이해는 반드시 믿음에 속한 것들 안에 존재해야 하고, 의지는 인애는 의지에 속한 것들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하겠다. 같은 말이지만, 주님에게서 비롯된 믿음과 인애는 이들 두 기능에 입류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들 두 기능은 이것들의 기능들의 상태에 따라서 그것들을 영접, 수용하고, 따라서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의 거처는  그 이외에는 어디에도 없다고 하겠다. 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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